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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부터 그랬다. 제대로 개발되어 있지 않은 금강산에 현대아산이 들어가 호텔과 부속시설을 짓고, 우리 국민이 비싼 입산료를 내면서도 관광을 간 것은 이를 통해 남북 관계가 순항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는지, 단지 관광을 다녀왔을 뿐인 사람들인데도 무언가 큰일이라도 하고 돌아온 것처럼 뿌듯해하곤 했다. 그러다가 우리 국민에 대한 총격 사망 사건이 발생한 이후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었다.

지난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금강산에 있는 남측 건물들이 흉물스럽다면서 모두 철거하고 이를 북한식으로 다시 지으라고 했다. 운용 또한 북한 당국이 독자적으로 할 것임을 시사했다. 2000년 북한 당국이 현대아산과 맺은 50년간의 개발권과 2003년 남북 당국 간 합의한 4대 경협합의서의 투자자산 보호 조항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꿔버렸다. 언젠 그들이 과거 합의를 존중했던 적이 있던가 싶으면서도, 작금의 상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결정에 전략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은 미국을 압박하며 핵 보유를 추구하고 있다. 단계적 비핵화를 통해 영변이나 기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제재를 해제 받고, 핵무기와 핵물질을 보존하려는 협상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터무니없는 시도는 우리 정부의 중재 아닌 중재를 거쳐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게 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 여하에 따라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속고 있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을 시험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북한도 미국 행정부가 쉽게 북한에 핵 보유의 길을 열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미국이 연말까지 셈법을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갈 것임을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 새로운 길이라는 것은 결국 핵을 보유한 자력갱생의 길이다. 지금까지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말하면서 한·미동맹이 해체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말해왔지만, 앞으로는 비핵화라는 말 대신 당당한 핵보유국임을 더욱 강조할 전망이다. 이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북한 경제가 견뎌낼 수 있는가가 문제였는데, 북한 당국은 답을 찾은 것 같다. 그게 바로 관광산업이다.

한때 30억 달러에 달하던 북한의 수출은 2017년의 강력한 제재들이 작동되면서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었다. 김정은 정권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구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 첫 만남 이후 벌써 다섯 차례나 개최된 북·중 정상회담의 결과인지, 북한 내 중국 관광객의 수가 크게 늘고 있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게 가능하겠냐고 물을 수 있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일각에선 지난 6월 시진핑 주석 방북 당시 관광객 200만명이 약속됐다고 한다. 이 인원이 1인당 1000달러쯤 지출하고 간다면 그 금액은 20억 달러가 된다. 북·중 무역 전성기에는 못 미치지만 북한 경제난을 해소해 줄 단비가 될 수 있다. 또 이 금액은 이달 초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회담에서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폐기와 농축우라늄 시설 동결의 대가로 제공하려 했다는 석탄 및 섬유가공업 수출 허용과 유사한 수준이다. 관광만으로도 제재를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는 상황이니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이런 상황임에도 북한의 금강산 관광 독자 운영 발표에 남북 접촉을 시사하는 내용이 있었느니, 창의적 방법의 금강산 관광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느니 하는 정부의 태도는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한다. 주변 환경 변화는 도외시한 채 원하는 것만 생각하는 소아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여전히 우리 기업에 위해를 가한 북한의 불법적 행동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안타깝지만 금강산 관광은 남북 관계의 현주소와 우리 정부 대응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본 글은 10월 28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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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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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