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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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제기

1997년 아시아경제위기에 즈음하여 시작된 동아시아 지역협력보다 구체적으로 아세안+3(ASEAN+3)는 많은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지난 15년간 발전을 거듭해왔다. 2013년은 ASEAN+3가 정례화 된 지 15년이 되는 해이며, 2004년에 출범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역시 곧 10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15주년, 10주년 등은 단순히 숫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 경제적 역동성을 감안할 때 지난 15년의 시간은 매우 많은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은 필연적으로 지역협력과 통합의 노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빠른 국력 신장에 따른 지역 질서 변화와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회귀 정책이 동아시아 지역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의 빠른 부상에 따라 경제-안보적 측면에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 적극적인 관여정책을 실시하며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였다. 이런 큰 전략적 움직임 속에서 동남아 국가들, 오세아니아 국가들, 인도 등이 나름의 전략 계산에 따라서 강대국과 복잡한 합종연횡을 가속화 해왔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은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그리고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았고, 그 속에서도 나름의 회복력(resilience)을 유지해왔다.

지난 10~15년간 이런 다양한 변화 속에서 동아시아 지역협력 혹은 동아시아 통합 노력 역시 이런 지역 질서의 변동과 무관하게 존재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난 10~15년 사이 동아시아 지역협력이 어떤 발전을 해왔는지 먼저 알아 보려고 한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는, 지역 질서의 변화 속에서 지금 동아시아 지역협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이런 검토를 바탕으로 마지막 장에서는 지역 전체 차원에서, 그리고 한국의 국가 이익 차원에서 지역협력을 어떻게 보완하고 활용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2.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시작과 발전

냉전 종식이 촉진한 동아시아 지역주의

동아시아 국가들 간 협력이 부상한 기원은 역시 1990년대를 전후로 한 냉전의 해체이다. 정치 안보적인 측면에서 냉전의 해체는 지역에 안보 공백을 남겨놓았다. 냉전의 해체에 따라 소련이라는 공산주의 위협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약화되고, 이는 다시 미국이 동남아 등에 미군의 힘을 유지해야 하는 유인을 크게 줄였다. 소련과 미국의 힘이 동시에 빠져나간 동남아 지역에는 힘의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힘의 공백은 과거 미국 혹은 소련이 책임지던 지역 안보 문제를 지역 국가들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동시에 힘의 공백은 역설적으로 지역 국가들이 강대국의 간섭에서 보다 자유롭게 지역안보 문제에 관한 협력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이런 맥락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아세안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이다.1

경제적인 차원에서 탈냉전기 직후 상황은 보호무역과 블록화로 요약된다. 냉전의 종식은 동아시아 지역 국가에게 보다 자율적 협력의 공간을 제공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이 강화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우루과이라운드의 진전은 지지부진 했다. 동남아 국가들에게 열려 있던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도 냉전의 종식과 함께 어려워졌다. 한편 1990년대를 전후로 유럽의 경제통합과 북미대륙의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 NAFTA) 등 지역 경제 블록화 추세는 수출에 크게 의존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이 시점에서 보호무역, 지역 경제 블록화에 대한 협상의 레버리지로 동아시아 자체의 경제협력 혹은 경제통합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등장했다. 1991년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모하메드 마하티르(Mohamed Mahathir)가 주창한 동아시아경제그룹(East Asian Economic Group, EAEG)은 이런 전략적 계산을 반영했다2.

미국이나 러시아가 포함되었지만 아세안의 주도로 아세안의 질서(ASEAN Way)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ARF나 미국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들만의 경제협력을 모색한 EAEG는 모두 허브와 스포크(Hub and Spoke)로 대변되는 냉전시기 동아시아 지역의 질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형태였다. 이런 형태의 지역협력에 관한 구상은 탈냉전에 의해 지역의 자율성이 증가한 결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세안 확대와 경제위기가 가져온 아세안+3

ASEAN+3와 EAS의 형성과 발전은 이런 큰 맥락의 변화와 함께 1997년 아세안의 확대, 그리고 1997~1998 경제위기라는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반영한다. 1997년 최초 아세안+3 비공식 정상회의는 동북아 국가들의 이니셔티브가 아닌 동남아 국가들의 이니셔티브로 시작되었다. 동남아 국가들의 선제적 이니셔티브 속에는 아세안이 갖고 있던 고민이 담겨있다. 1967년 창설되어 브루나이의 가입까지 6개 국가 연합의 형태를 가지고 있던 아세안은 1990년대를 전후로 체제 전환을 겪은 대륙부 동남아 국가들이 새로운 회원국으로 편입되면서 팽창한다. 1995년 베트남이, 1997년 미얀마와 라오스가 아세안에 가입하면서 새로운 회원국과 기존 회원국 사이의 경제적 격차, 정치적 차이 등으로 인해 기존 아세안 국가들이 가졌던 협력과 통합의 비전에 상당한 의문이 제기되었다.3 또한 새로운 회원국의 포함은 아세안의 초국가적 문제를 더욱 가중시켰다. 이러한 늘어난 과제는 아세안만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다. 1997년 동남아 국가들이 동북아 3국에 정상회의를 제안한 것은 1991년 마하티르가 제안한 EAEG의 연속선상에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를 외연의 확대, 즉 +3국가들을 포함하여 해결하고자 했던 아세안의 전략이다.

1997~1998년 아시아 경제위기가 직접적으로 아세안+3 체제를 가져왔다고 보기는 시점상 어렵다. 그러나 이 경제위기가 아세안+3 체제가 한 번의 정상회의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변수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4 첫 번째 비공식 정상회의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한국은 경제 위기를 맞게 되었고 주변의 다른 국가들도 경제위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태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주변으로, 그리고 동북아 국가들로 신속히 전염되는 것을 본 지역 국가들은, 동북아와 동남아를 합친 동아시아 지역 경제가 얼마나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경제위기의 해법 모색과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미국 등 외부 세력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로써 아세안+3 정상회의 체제와 지역협력은 지역 국가들의 지지를 얻으며 빠르게 확장되어 나갔다.

경제∙금융협력에 의해 추동된 아세안+3

아세안+3 지역협력의 분야 중에서 가장 빠른 발전을 보인 것은 역시 경제협력이다. 경제협력이 가장 빠른 발전을 보인 것은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아세안+3 체제 발전 초기에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경제위기 극복이었고 따라서 경제협력이 가장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다른 지역협력을 보더라도 국가 간에 가장 손쉽게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부분이 경제협력이다. 특히 주권문제에 민감한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 사이에서 경제협력은 크게 주권을 손상시키지 않고 협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한 경제협력을 통한 가시적 이익의 공유는 국내적으로도 설득력이 높은 부분이기 때문에 국가 간의 합의와 이행이 보다 쉬운 부분이다.

동아시아 경제협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hiang Mai Initiative, CMI)이다. CMI는 역내 국가 간 위기 시 상호 지원을 위한 스왑협정(Swap Agreement)으로 2000년 아세안+3 재무장관 간의 합의로 시작되었다. 이후 2007년 양자 스왑협정에 기반했던 CMI의 다자화 협의가 시작되어 2009년 중국(32%), 일본(32%), 한국(16%), 아세안(20%)의 비율로 다자화(Chiang Mai Initiative Multilateralisation, CMIM)가 이루어졌으며, 2012년에는 공동기금을 2천4백억 달러까지 확대하는데 합의하였다.5 무역협력, 즉 시장통합에서는 아세안+3가 큰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하지만 경제-금융위기 공동 대처를 위한 금융협력 분야는 상대적으로 빠른 발전을 보여 왔다. CMI 외에도 현재 CMI의 한계를 보충해줄 수 있는 경제 감시 및 조사 기능을 담당하기 위한 아세안+3 거시경제감시기구(ASEAN+3 Macroeconomic Research Office, AMRO)가 2011년 합의로 세워졌다. 6또한 아세안+3 국가 내의 풍부한 외환을 지역차원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아시아 채권시장 활성화 방안(Asian Bond Market Initiative: ABMI)에 관한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7

정치안보 부문의 협력은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 가장 뒤처져 있는 부분이다. 1994년 야심 차게 출발한 ARF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유일한 다자안보 기구임에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처럼,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 특유의 주권 민감성으로 인해 정치안보 협력이 그리 활발하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포럼(East Asia Forum, EAF), 동아시아 싱크탱크 네트워크(Network of East Asian Think-Tanks, NEAT) 등에서 지역 안보문제가 꾸준히 의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또한 2010년부터 기존의 아세안 국방장관회의(ASEAN Defense Ministers’ Meeting, ADMM)가 확대되어 매 2년마다 개최되는 아세안 국방장관회의 플러스(ASEAN Defense Ministers’ Meeting Plus, ADMM+)가 열리고 있다. ADMM+는 기존의 외교장관 모임인 ARF와 달리 국방장관들이 모이는 안보관련 회의로, 아세안+3(한국, 중국, 일본) 국가 외에 ++3 국가(호주, 뉴질랜드, 인도)와 +++2 국가(미국, 러시아) 국방장관이 참여하고 있다.8

정부 간 제도화된 협력이 구체화 되는 과정에서 아세안+3 협력을 주도한 것은 2000년 한국 주도로 소집되어 활동을 시작한 동아시아연구그룹(East Asia Study Group, EASG)의 보고서가 제시한 아세안+3 26개 협력 사업이다. 아세안+3 국가들은 2002년 이 보고서의 제안 사업들을 채택하고 2007년까지 이 26개 장∙단기 중점 협력 사업들을 중심으로 협력을 진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각종 정부 간 협의 기구들이 제도화되는 성과를 거두었다(부록 1, 2 참고). 그러나 2007년에 와서 아세안+3와 동아시아 정상회의 간의 기능적 중복성의 문제가 나타나고 또한 1997년 시작한 아세안+3가 10년차에 접어들면서 26개 사업을 다시 재분류하고 새롭게 개편할 필요성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아세안+3 국가들은 2007년 제2차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관한 선언(The Second Joint Statement on East Asia Cooperation)을 발표하면서 기존 사업들을 재정리하여 아세안+3 협력 이행 계획, 2007~2017(ASEAN Plus Three Cooperation Work Plan, 2007-2017)로 이를 대체했다 (그림 1).

그림 1. 2007~17 아세안+3 이행계획의 주요 항목9

2007~17 아세안+3 이행계획의 주요 항목

3. 도전에 처한 동아시아 지역협력

유럽연합과 다른 발전 경로상의 동아시아 지역협력

지난 15년여 동안 동아시아 지역협력은 빠른 발전을 보여 왔다. 냉전기간 동안 아세안을 제외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국가 간 자체적 협력의 경험이 거의 없던 상태에서 지금은 1년에 50여 차례 이상의 정부 간 협력을 위한 회의가 개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년 아세안 10개국과 +3, ++3, +++2 국가의 정상들이 빠짐없이 모이는 정상회의가 개최되고 있다(그림 2).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은 이미 경제통합을 넘어서 정치통합으로 진행하고 있는 반면,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제도화 수준은 아직 경제통합의 단계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제도화의 수준 역시 아직은 낮다는 비판이 있다.10 특히 문화, 언어, 종족적으로 동질적이지 않은 동아시아 국가 간 통합은 보다 동질적인 유럽의 통합에 비해 어렵거나 궁극적으로는 실패할 것이라는 관찰이 많다.

이런 비판에 대한 동아시아의 반박도 있다. 동아시아 지역 협력과 통합은 1950년대 초에 시작된 유럽연합의 협력과 통합에 비해서 아직 그 역사가 짧다. 또 유럽의 통합은 국민 국가의 형성 이래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이며 오히려 예외적인 사례가 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지역의 통합은 지역 상황과 역사적 경험에 따라 그 경로가 다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구성주의자들 역시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초기 상황은 신뢰구축과 사회화의 과정이며 지금의 다소 느린 제도화는 이후 가속화를 위한 단계이지 근원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11

그림 2.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구조12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구조

 

추동력 약화에 직면한 동아시아 지역협력

동아시아 지역협력이 가지고 있는 실질적 문제는 낮은 수준의 제도화나 느린 속도가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동력 약화, 다시 말해 지역 국가들의 점차 낮아지는 참여 수준과 의지 문제이다. 지역협력이 제도화되고 심화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런 심화 이전에 협력이 약화되어 무의미해질 위험이 있다. 여전히 정부간 회의, 정상회의가 열리고 각 국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협력 사업들도 진행되고 있지만, 국가들의 관심이 약화되고 지역협력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저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협력에 대한 전반적 관심이 감소하고 있으며, 지역 국가들이 협력의 심화를 위해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취하는 일이 거의 없다. 지역협력의 결정적 실패로 인해 지역협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회의들은 그대로 있으면서 협력의 동력이 떨어지는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요소들이 지역 국가들로 하여금 지역협력에 대한 관심을 저하시켰는가?

공통의 위기의식 소멸

지역협력이나 지역통합은 필연적으로 국민국가의 가장 핵심적 요소인 국경을 낮추고 주권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난 수백 년간 역할을 해왔던 국경과 주권, 그리고 국민국가 체제를 넘어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지역협력과 통합의 형태로 국민국가 체제를 넘어서려는 노력은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는 중요한 외부의 충격이나 위기에 대한 반동적(reactionary) 현상인 경우가 많다. 유럽연합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경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으로부터 출발했고,13 동아시아 지역협력 역시 경제성장의 최고점에서 개별 국가들을 강타한 경제위기를 공동의 노력으로 극복하고 이런 경험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기제로 시작되었다.14 따라서 위기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지역협력이나 통합 노력을 약화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부분적으로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약화 역시 위기의 기억이 약화되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97~1998 아시아 경제위기가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할 만큼 심각한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위기를 겪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매우 빨리 경제위기에서 회복했다.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지역 국가들이 1990년대 말에 가졌던 위기의식은 약화되었고, 이런 변화가 지역협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역 리더십의 부재

지속되는 지역협력과 그렇지 못한 지역협력의 차이는 위기의식을 넘어서는 협력 유인의 존재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지속되는 지역협력은 위기의식이 아직 크게 작용하고 있는 동안 지역 국가들 간에 협력의 습관(habit of cooperation)이 생기거나 협력이 강력하게 제도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기능협력의 발전에 따라 지역 국가들이 협력을 통해서 실질적 이익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되면 이런 이익에 대한 기대가 협력의 지속을 위한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유인은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는 인위적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적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하다.15 지역 리더십은 지역협력과 통합의 비전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지역 국가들을 설득하여 국민국가의 경계와 주권을 넘어서는 협력을 이끌어 낸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협력의 초기에는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나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런 지역적 리더십을 행사하는 대표적 인물이었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약화는 마하티르와 김대중 같은 지역 리더가 사라진 이후 눈에 띄게 드러난다. 지역의 큰 국가는 지역 국가들에게 공공재를 공급하면서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이나 일본 등 큰 국가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들의 리더십 행사 의지는 헤게모니를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반대로 작은 국가들은 지역적 리더십을 행사할만한 인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기반하고 있는 국가의 대외적 힘이나 크기가 너무 작아 지역적 리더십을 행사하기에 적절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결국 초기 위기의식 이후 지역협력과 지역 전체에 비전을 제시하고 지역 국가들을 독려하여 협력으로 이끌어내는 지역 리더십의 부재가 현재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약화를 초래한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균형 전략에 따라 증가하는 제도적 피로감

국가 간 신뢰가 부족한 지역협력 속에서 개별 국가들은 절대적 이익 보다는 상대적 이익에 관한 고려를 앞세우게 되고, 이 때문에 제도 내 균형(intra-institutional balancing), 제도 간 균형(inter-institutional balancing)의 문제들이 등장하며 이는 지역협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16 제도 내 균형, 제도 간 균형 전략은 동아시아 지역협력 내 제도들의 중복적인 형성을 촉진했다. 구체적 이익이 부족한 상태에서 제도적 틀이 지속적으로 새로 생겨나고 중복되는 제도들이 효과적 협력을 견인하지 못하는 상황은 지역 국가들로 하여금 제도에 대한 피로감(institutional fatigue)을 갖게 하고 참여를 저하시키며 결국 협력의 추동력을 약화시킨다. 이런 대표적인 예로는 아세안+3와 EAS, 그리고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East Asia Free Trade Area, EAFTA)와 동아시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in East Asia, CEPEA)이 있다.

EAS는 당초 아세안+3 협력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고 발전된 상태에서 아세안+3 체제의 발전된 형태로 26개 협력 사업에 포함되었던 사항이다. 그러나 2004년 말레이시아와 중국이 조속한 시일 내에 동아시아정상회의 체제를 출범시킬 것을 추진하면서 2005년부터 기존 아세안+3 정상회의 체제와 함께 추가적으로 설치된 정상회의 체제이다. 13개국의 회원국이 중복되는 상태에서 아세안+3와 EAS의 정체성을 구분하기 위해서 아세안+3 체제에서는 주로 기능협력을, EAS에서는 주로 지역의 주요한 전략적 사안에 대한 정상 간의 의견 교환을 다루기로 했으나 사실 EAS와 아세안+3 간에 일정한 부분 기능적 수렴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표 1).

표 1. 아세안, ASEAN+3, EAS 간의 기능협력 중복17
분야 아세안정상회의 ASEAN+3 EAS
경제위기와 안정 0 0 0
기후변화 0 0 0
식량-에너지 안보 0 0 0
재난관리 0 0 0
광역질병 0 0 0
개발격차 0 X X
보건-교육 0 0 0
경제, 금융협력 X 0 0

지역 내 경제 통합 역시 오랫동안 두 가지 기제, 즉 EAFTA와 CEPEA가 경쟁을 해왔다. EAFTA는 아세안+3 국가만을 포괄하고 있으며, 중국 등의 국가들이 지지해왔다. 반면 CEPEA는 아세안+6 국가들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고, 중국을 견제하는 일본, 그리고 EAFTA에 포함되지 않은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이 지지해왔다. 이외에도 두 개의 경제 통합 기제에 포함된 일부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역외에서 제안된 형태의 환태평양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도 있다.18 최근에는 아세안+6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면서 아세안이 주도권을 쥐고 경제통합을 하겠다는 지역포괄적경제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도 이 대열에 참여했다. 이렇게 지역협력 내에서 유사한 주제를 다루는,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제도들이 난무하는 것은 지역협력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에게 혼란을 주고 제한된 능력으로 수많은 제도에 참여하는 데 따른 부담,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협력에 대한 지역 국가들의 참여의지 저하로 나타난다.

강대국 경쟁에 가려진 실질 협력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대국 간의 경쟁도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동력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 2000년대 후반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 혹은 아시아 재관여(re-engagement) 정책이 시작되면서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제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2010년 EAS에 정식으로 참가 신청을 한 미국은 2011년부터 러시아와 함께 새로운 참가국으로 EAS에 등장했다. 1997년 아세안+3 정상회의가 시작되었을 때, 그리고 2005년 EAS가 시작되었을 때 미국은 지속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만의 지역협력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껴 동아시아에 재관여를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EAS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기능협력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참여는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기능협력을 간접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기제인 EAS 내에서 펼쳐지면서 지역협력의 참가 국가들은 지역협력을 통한 실질협력, 기능협력 보다 지역에서 펼쳐지는 강대국 간의 경쟁이 EAS 내에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그리고 이런 경쟁이 자국의 이익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보다 큰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또한 미디어의 관심 역시 아세안+3나 EAS에서 이루어지는 기능협력 보다는 미국과 중국이 EAS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다시 말하면 어떤 전략적 경쟁이 이루어졌는가에 보다 큰 관심을 보이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결국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기능협력과 실질협력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고, 지역협력에 참가하는 동력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4. 정책제안

기능협력 강화를 통한 선순환의 지역협력 발전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활성화 혹은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위한 정책제안은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 간의 지역협력이 왜 필요한가에 관한 질문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필요성은 가장 표면적이고 직접적으로 동아시아 지역협력이 지역 국가들에게 실질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역협력의 필요성 혹은 목적은 애초 동아시아 지역국가들 간의 국경을 넘어선 협력이 시작되었던 최초의 목적이기도 하다. 먼 미래에 통합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일차적 목적은 협력이고 이를 통한 이익의 공유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개별 국가들의 이익 특히, 정치적 안정과 경제성장이란 이익에 민감한데, 이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초기 모습, 즉 아세안+3의 시작이 공통으로 직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 협력이 지역 전체의 공공재 혹은 공공선의 창출, 그리고 지역 통합이라는 큰 목표를 지금 당장 지향하지 않아도 지역협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지역협력을 통해서 개별 국가들이 만족할 만한 이익을 서로 나누어 갖는다는 목표가 지역협력의 동력을 지속시키는 데 보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협력의 핵심은 역시 기능협력이다. 지역 국가들이 기능협력의 유용성을 확인하고 기능협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기능협력의 강화를 통해서 실질적 이익을 얻게 되면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자발적 참여가 보장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에 형성되어 온 대화의 습관(habit of talking), 회의의 습관(habit of meeting)을 협력의 습관(habit of cooperation)으로 전환시킬 수 있고 지역협력은 보다 공고화 될 것이다. 기능 협력에 따른 이익 공유, 그리고 이를 유인으로 한 지속적 지역협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국가들간의 신뢰 구축이란 결과를 낳게 된다. 지역 국가들 간의 신뢰구축은 제도 간, 제도 내 균형 전략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균형 전략 약화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나타났던 중첩되는 제도의 문제, 제도적 피로감을 해소할 수 있다. 균형 전략의 약화와 제도적 피로감의 해소는 다시 보다 원활한 지역협력이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기능협력의 이익이 협력의 지속으로 이어지고 신뢰의 구축을 낳게 되며 이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장애물인 균형 전략과 제도적 피로감을 해소하여 한층 심화된 지역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선순환을 만들어 낸다.

지역협력을 통한 강대국 경쟁의 순화

지역협력의 강화와 공고화는 역내에서 일어나는 강대국 경쟁 문제를 순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강화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참여 국가들 간의 상호 신뢰 증진을 가져올 수 있다. 협력 행위의 반복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경쟁이 서로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부터 기인한다면, 지역협력의 강화를 통한 신뢰 구축은 강대국 경쟁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경로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이 강화되고 지역협력이 제도화되는 방법이다. 지금보다 더 구속력 있는 제도에 기반하여 지역협력이 진행될 때, 이는 보다 효과적인 기능협력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기능협력을 넘어선 안보 문제에 관한 협력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동아시아 지역에서 안보 협력이 제도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다면, 이 제도는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행동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이 제도화된 안보협력으로까지 발전하지 않는다고 해도, 미국과 중국이 지역 국가들의 지지를 얻고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구도를, 지역 국가들은 강대국에 대한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으로 인해서 전략적 불확실성을 안고 가야 하는 지역의 중소국가들 간에 지역협력의 장 속에서 전략적 합의, 다시 말해 지역에서 바람직한 미∙중 관계에 관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런 합의에 기반해 대 강대국 레버리지를 사용한다면 미국과 중국의 행동에 일정한 구속력을 행사할 수 있다.

지역협력에 관한 한국의 비전: 통합이 아닌 협력의 비전

지금까지 한국의 지역협력에 관한 정책과 전략은 장기적 비전이란 측면에서 취약했다. 그 결과로 동아시아 지역협력 속에서 한국은 늘 중국, 일본, 그리고 아세안이라는 세 개의 중요한 행위자의 선제적 움직임에 대한 반응을 우리의 전략으로 삼아왔고 이런 전략의 부재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라는 다소 애매한 명제하에 숨겨져 왔다. 이런 독자적 전략 부재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이 목표로 하고 있는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우리만의 비전이 없는 문제와 연결된다. 실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역 공동체의 비전이 그대로 달성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 정책을 설정하고 노력하는 것과 단순하게 지역의 다른 행위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에 대해서 반응하는 식의 정책을 펴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현 상황에서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통합과 동아시아 지역협력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통합은 여전히 지역 국가들의 주권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상황에서 너무 높고 장기적 목표로 여겨질 수 있으며, 그에 따라서 오히려 지역협력에 나서는 국가들 사이에 회의론만을 가중시킬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목표에서 통합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지울 필요는 없지만 이를 다소 미루어 놓고 당장은 협력 자체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통합은 지역협력 심화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이지 그 자체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방향의 비전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결국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통합에 대해서 가지는 비전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협력의 극대화와 심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통합의 문제에 관해서는 아직 고민할 필요가 없다. 협력을 통해서 지역 국가들이 실질적 이익을 나누어 가지고 지역 전체에 긴급한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비전은 지역 국가들 사이에 반대할만한 소지가 적으며, 보다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공해 줄 수 있어 환영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조 속에서 지역 국가들의 이익을 위한 기능협력, 실질협력을 강조해야 한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먼저 지역 국가들에게 직접적 이익이 될 수 있는 협력의 분야, 그리고 지역이 전체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긴급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전략적 장점과 아세안의 중요성

지역협력의 비전을 가지고 동아시아 협력을 주도하기 위한 또 한 가지 전제 조건은 한국의 전략적 장점을 인식하고 보다 능동적인 전략을 펼쳐 나가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처럼 동아시아 지역협력, 특히 아세안+3는 중국, 일본, 아세안 그리고 한국이라는 네 개의 큰 행위자를 가지고 있다. 이 속에서 한국은 분명히 객관적 열세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압도적 경제력과 물리적 힘을 가진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일본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된다. 이런 문제는 일본에게도 유사하다. 동남아 개별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 이니셔티브를 쥐는 것도 경계의 대상이며, 일본은 동남아 국가들과 과거사 문제도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아세안이라는 하나의 단일체로 움직이면서 중요한 행위자의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역시 작은 국가들의 모임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한국의 경우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인 중국, 일본과 달리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경계를 받지 않는 국가이고 동남아 국가와 과거사 문제도 없다. 오히려 한국은 아세안 국가들에게 적절한 협력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개도국에게는 발전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한∙중, 한∙일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불신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양자로부터 비교적 큰 경계의 대상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은 지역협력 속에서 상호 견제하는 경쟁관계에 있다. 그에 반해 한국의 제안은 보다 수월하게 수용된다. 실제로 지역협력 초기 동아시아 비전 그룹(East Asia Vision Group, EAVG), EASG, EAF 등 한국이 주도했던 중요한 제안은 지역 국가들로부터 큰 지지를 얻었다. 한국의 애매한 크기와 지역 안에서의 위치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렇게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동아시아 지역협력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아세안 국가들과 합의를 통해서 지역협력을 주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세안 국가와의 협력은 한국이 지역협력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을 증가시킨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협력을 매개로 아세안과 협력을 하게 되면 이는 한∙아세안 관계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아세안은 이미 한국의 제2의 무역상대지역이고, 제2의 건설수출 시장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아세안 사이에 인적교류도 연간 4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동남아 출신 외국인 신부, 이주노동자, 유학생은 전체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과 아세안 간의 실질적 교류가 활발하다. 다시 말해 아세안이 한국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동아시아 지역협력 차원에서 아세안과의 협력은 전반적인 한∙아세안 관계 발전과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인간안보 문제를 중심으로 한 기능협력 주도

한국은 상기에서 언급한 한국의 전략적 장점, 지역협력의 비전하에 아세안과의 전략적 합의를 통해서 지역협력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역협력의 주도는 반드시 물리적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지역협력의 바람직한 비전을 제공하고 우리의 장점을 살려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면, 충분히 지역협력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지역협력을 주도하는 입장에서 한국은 기능협력을 강조해야 한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 기능협력의 심화를 주장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택이다. 개별 국가들이 기능협력의 강화를 통해서 실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누구도 반대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이 주창하는 동아시아 지역 기능협력의 심화는 일차적으로 인간안보의 문제와 개별협력에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대부분 국가들은 빠른 경제성장과 경제적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안보 문제라는 측면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기후와 환경 문제, 자연재해, 광역질병, 해상안전과 같은 문제들이 동아시아 지역의 대부분 국가에서 나타나는 대표적 인간안보 문제이다. 더욱이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문제들은 어느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초국가적 문제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공동의 노력으로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거나 대처할 수 있는 지역적 메커니즘을 만들고 개도국의 인적 자원을 개발하는 데 지역협력의 초점을 두어야 하며 한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한국의 이니셔티브는 개발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한국의 대 동남아 정책, 혹은 대 개도국 정책과도 부합하며, 한국의 중견국 지위를 강화하는데 있어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더 나아가 아세안+1 차원에서 중국, 일본, 한국이 개별 아세안 국가, 혹은 아세안 전체와 하고 있는 중복적인 인간안보협력 사업들 간에 적절한 교통정리를 해서 협력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지역협력에서 인간안보 문제에 관해 한국이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부록 1. 아세안+3 26개 협력 사업>
구분 협력 사업 내용
단기사업 17개항 동아시아 기업인 협의회 설립
저개발국을 위한 일반 특혜 관세와 관세 우대 체계 확립
해외직접 투자에 유리한 환경 조성
동아시아 투자 정보 네트워크 설립
성장지대 인프라 공동 개발 및 사적 부문 참여를 통한 금융 재원 확보
인프라, 정보통신, 인적자원개발, 아세안 경제통합에 대한 지원 및 협력
기술이전과 공동 기술개발을 통한 협력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과 인터넷 보급을 위한 정보통신 협력
NEAT 설립
EAF 설립
동아시아 포괄적 인적자원 개발 추진
빈곤감소 프로그램 개발 추진
기본적인 보건 제공을 위한 협력
비전통 안보 분야의 협력을 위한 메커니즘 개발
동아시아 정체성 함양을 위한 교육기관간의 협력 촉진
예술과 문화적 유산 보존을 위한 전문가 교류와 네트워킹
동아시아 연구의 진작
장기사업 9개항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설립
중소기업의 투자 진흥
동아시아 투자 지대 설립
지역 금융 기구 설립
지역 환율 조정 기구 간의 협력
아세안+3 정상회의를 EAS로 개편
지역 해양 환경 협력의 강화
에너지 정책 관련 지역 협력을 위한 제도 설립
시민과 시민사회 참여를 위한 NGO와 협력 증진

* 동아시아 연구 그룹 최종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 (http://www.asean.org/images/archive/pdf/easg.pdf)

<부록 2. 아세안+3 정부간 회의 구조>
분야 장관회의 고위급회의 국장급회의 실무회의
외교장관 0 0 0 0
초국가적 범죄 0 0 0
경제장관 0 0
FTA 전문가회의, 지적재산권회의, 물류회의, 통계회의
재무장관 0 0
중앙은행 0 0 0
에너지 0 0
바이오매스, 핵문제회의
환경 0 0
농수산 0 0
정보통신 0 0
관광 0 관광공사회의
노동 0 0
보건 0
문화예술 0 0
사회복지 0 0
청소년 0 0
과학기술 0 0
농촌, 빈곤 0
자연재해 0
광산, 자원 0
여성 0

* ASEAN+3 Cooperation Database를 바탕으로 작성 (www.asean.org/images/archive/22206.pdf)

*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 1

    Rodolfo C. Severino. 2009. The ASEAN Regional Forum. ISEAS: Singapore. 5-6.

  • 2

    이재현. 2007. “마하티르의 동아시아 지역주의 담론 분석: 서구에 비판적인 아시아주의적 발전연대의 추구” 『국제정치논총』 47:1.

  • 3

    Donald E. Weatherbee. 2005. International Relations in Southeast Asia: The Struggle for Autonomy. Rowan & Littlefield: Lanham. 91-93.

  • 4

    Paul Evans. 2005. “Between Regionalism and Regionalization: Policy Networks and the Nascent East Asian Institutional Identity” in T. J. Pempel. ed. Remapping East Asia: The Construction of a Region. Cornell University Press: Ithaca. 208.

  • 5

    CMIM의 출자 비율은 국가들 사이에 상당한 논란이 된 바 있다. 결국 32:32:16:20의 비율로 정해졌는데, 이는 중국과 일본이 같은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낮다는 가정 아래 아세안 입장에서 동북아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 내의 가능한 조합이 50%를 넘지 않는 조합이다. 또, 중국이나 일본이 50%를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세안과 합의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 6

    AMRO는 개별 국가의 거시 경제 상태를 감시하여 경제위기 가능성을 미리 예방하는 기능과 동시에 CMIM이 위기를 맞은 국가에 지원할 때 조사를 담당하고 조건을 설정하는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AMRO 이전에는 자체적으로 경제위기를 조사하고 평가할 기능을 결여하고 있어서, 전체 기금의 20%만 CMI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나머지는 IMF의 실사와 지원에 의존하도록 되어 있었다.

  • 7

    역내 풍부한 외환(USD)이 주로 안전한 미국의 채권을 사는데 쓰이는 반면,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높은 프리미엄을 부담하면서 국채를 발행하는 상황에서, 역내 외환을 역내 국가 채권을 사는데 더 투자함으로써 역내 국가들의 국채 프리미엄 부담을 줄일수 있는 효과가 있다.

  • 8

    ADMM+는 현재 그 산하에 5개 즉, 평화유지, 인도적 지원/재난구조, 테러리즘, 해양안보, 군용의약품 등의 working group을 두고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협력 분야가 ARF/CSCAP와 중복되는 것이 많아 향후 이에 관한 교통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9

    ASEAN Plus Three Cooperation Work Plan (2007-2017) (http://www.mofa.go.jp/region/asia-paci/asean/conference/asean3/plan0711.pdf)

  • 10

    Miles Kahler. 2000. “Legalization as Strategy: The Asia-Pacific Case” International Organization. 54:3. 549-571.

  • 11

    Alice D. Ba. 2009. [Re]Negotiating East and Southeast Asia: Region, Regionalism and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Stanford University Press: Stanford. Ch. 2.

  • 12

    Council for Security Cooperation in the Asia-Pacific (CSCAP). 2011. CSCAP Regional Security Outlook 2011. 6.

  • 13

    K. J. Holsti. 1995. International Politics: A Framework for Analysis. Prentice Hall: Englewood Cliffs. 362-363.

  • 14

    Pascal Fontaine. 2003. Europe in 12 Lessons. Office for Publications of the European Communities: Luxembourg.

  • 15

    N. Ganesan. 2000. “ASEAN’s Relationship with Major External Powers” Contemporary Southeast Asia. 22:2. 258-279.

  • 16

    Lee Seungjoo. 2012. “The Evolutionary Dynamics of Institutional Balancing in East Asia” EAI Asia Security Initiative Working Paper No. 21. (http://www.eai.or.kr/data/bbs/eng_report/20120209104282.pdf)

  • 17

    2009년에 개최된 일련의 정상회의에서 제시된 주요 기능협력 아젠다를 정리한 것.

  • 18

    Ian F. Fergusson and Bruce Vaughn. 2011.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 CRS Report for Congress, R40502. (http://assets.opencrs.com/rpts/R40502_20110110.pdf)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