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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사이 중재 역할 중요 / ·회담으로 기울어져 / 공조 약화 땐 대북 협상력 난항 / 동맹 강화·비핵화 보조 맞춰야

뉴욕 한·미 정상회담이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와 유엔 총회 연설을 마치고 귀국했다. 한·미 양측의 다양한 공개 발언 덕분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던 비핵화 협상의 단면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핵시설 사찰을 일부 수용한 듯하고, 미국은 제대로 된 사찰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입장이다.

비핵화 협상은 3자 게임이다. 여기엔 중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간자가 양 극단의 어느 일방과 연계하면 다른 일방은 고립된다. 한국이 미국 편에 서면 북한이, 그 반대의 경우 미국이 고립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평양공동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 정부의 역할은 나름 평가받을 만했다. ‘촉진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조심스러운 중간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한국은 더 이상 중간자가 아닌 모습이다. 평양공동선언의 비핵화 조항은 북한의 기존 입장에 기울어 있다.

어떤 방식의 비핵화 협상을 진행할 것인가에 있어 정부는 북한 입장을 수용했다. 그동안 북한은 시간을 벌고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핵능력을 하나씩 따로 떼어 협상하고 따로 보상받고 싶어 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을 일괄적으로 신고받고, 이를 검증해 나가면서 보상하려 했다. 평양선언은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폐기와 영변핵시설을 협상에 단계적으로 활용하려는 북한의 ‘살라미’ 협상을 수용했다. 그 결과 미국도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존 입장을 바꾼 것 같다. 동창리 미사일 시설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반면, 미국은 핵 목록 신고를 종전선언의 조건으로 제시해 왔다. 종전선언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이 선행돼야 하고, 그 판단 기준으로 핵 목록을 요구해 온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는 북한의 동창리 시설 폐기에 대해 미국의 상응조치를 언급했다. ‘남북 대(對) 미국’이라는 전례 없던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었는지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공개 메시지를 강조했다. 미국 측에 전할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실히 보여줄 구체적 행동계획이 따로 있다면 그나마 평양선언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가 모였다. 뉴욕 정상회담을 전후한 한·미 양국의 발표내용을 보면 특별한 메시지는 북한이 사찰을 일부 수용하겠다는 것과 특정 무기체계 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할 수 있다는 내용인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은 철저한 사찰을 통한 완벽한 검증을 요구하고 있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과정에서 이를 확인하겠다는 모습이다. 또한 우리 입장에선 북한의 핵탄두와 핵물질이 더 중요한데, 미국을 겨냥한 미사일을 우선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다.

물론 긍정적인 징후도 발견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차 북·미 정상회담 발언이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10월 방북은 북한도 나름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할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으로 전개될 ‘검증’을 둘러싼 북·미 간의 신경전이 잘 해결된다면 비핵화 협상은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무언가 진전이 이루어질 듯하면서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가득한 한반도 정세이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한·미 공조 기반하에 비핵화의 진전’이 그것이다. 3자 협상의 특징상 남북관계의 진전은 한·미 관계의 약화라는 위험이 따른다. 북핵은 그대로인데 재래식 군사력 제약과 교류협력을 강조하는 한국 정부가 안아야 할 한·미 관계의 마찰요인이 그것이다. 이미 미국 행정부 주요 인사의 발언 곳곳에서 한·미 공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발견된다. 남북관계와 비핵화 협상의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선의는 이해하지만 한·미 공조가 약해지면 대북 협상력이 약해진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북한의 비핵화와 보조를 맞춰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지름길이다.

 

* 본 글은 9월 27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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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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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