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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 성탄절 선물은 산타 할아버지 대신 북한이 줄 듯하다. 허풍일 수도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같이 큰 도발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선물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의도와 결과다.

북한은 핵보유를 위해 나아가고 있고 이를 막지 못하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핵인질이 된다. 지난 주말에 개최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결과는 예상보다 수위가 약했다. 적어도 인공위성은 쏘아 올릴 것으로 예상됐던 그간의 성명들과는 달리 핵무기를 명시하지 않고 이를 의미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강조했을 뿐이다. 오늘이나 내일쯤 발표될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말폭탄 수준이다. 대미협상의 연말 시한을 설정함으로써 스스로 초래한 위기의 결정적 순간에 김정은은 직구가 아닌 커브를 선택한 듯하다.

만일 직구를 던진다면 홈런을 얻어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쟁을 하는 도중에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 없었다는 미국 역사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재선에 실패할 경우 자신의 앞에 다가올 수많은 형사와 민사소송을 고려하면 전쟁을 기피하는 그의 기존 입장과 달리 대북 군사옵션의 유혹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같은 고강도 전략도발을 선택한다면 김정은의 운명은 앞날을 알 수 없다.

끝내 북한이 전략도발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김정은의 체면은 구겨지겠지만 핵을 보유하며 버티기를 시도할 수 있다. 미국은 새로운 제재를 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도 제재 이행과 관련해 어느 정도 북한의 편의를 봐줄 것이다. 그렇다면 현상유지 상황에서 시간을 보내며 핵보유를 공고화하려는 것, 이것이 바로 김정은의 새로운 길일 가능성이 높다. 자력 부흥이니 자력 번영이니 하는 용어들은 선전·선동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방심은 이르다. 일단 미국을 안심시켜놓고 긴장을 풀게 한 다음 전격적인 도발을 통해 허를 찌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북한이 그 도발의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단거리미사일이나 해안포로 위협을 가해올 가능성도 있다. 미국 대통령은 당장 재선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족한 상황이기에, 한국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것이 도발의 효과 측면이나 한미동맹 이간계 차원에서도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걱정되는 건 오히려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언제부터인가 북한 문제만 나오면 무기력증에 빠져버렸다. 북한의 합의사항 위반은 물론이고 군사적 도발이나 모욕적 발언을 감행해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말만 화려했지 운전이나 중재를 할 실력과 의지를 갖추지 못한 결과다. 반복되는 실수에 `북한이 핵을 보유해도 남북 교류만 잘 이루어진다면 그 핵은 위협이 아니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새로운 길이 필요한 건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보위를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주민들 삶이 어떻게 되든 개의치 않는다. 이런 북한을 정상회담 이벤트 몇 번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 이젠 정부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대화만으로 북한을 설득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며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다. 핵폐기 없는 진짜 평화는 없다. 화려한 이벤트가 없더라도 우리가 가야 할 `비핵 평화`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야 한다.

 

* 본 글은 12월 24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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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