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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터키와 리비아는 동(東)지중해를 놓고 양국 간 해양경계획정 관련 양해각서(이하, ‘2019년 MOU’)를 체결했다. 2019년 MOU의 내용은 단순하지만 그 파급은 매우 컸다. 주변 국가들인 그리스, 이집트 등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터키와 리비아 간 2019년 MOU를 둘러싼 동지중해의 혼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2019년 11월 27일 터키와 리비아는 ‘Memorandum of Understanding between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Turkey and the Government of National Accord-State of Libya on Delimitation of the Maritime Jurisdiction Areas in the Mediterranean’이라는 명칭을 가진 MOU를 체결했다. 터키와 리비아 양국 간 합의의 명칭이 ‘MOU’이기 때문에 이 합의를 양국 간 법적 구속력 없는 ‘정치적’ 합의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19년 MOU는 그 명칭에 관계없이 엄연히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1969년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조 제1항(a)는 조약을 “단일 문서 또는 둘 이상의 관련 문서로 되어 있고, 그 특정 명칭이 어떠하든 서면형식으로 국가들 간에 체결되고 국제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국제적 합의”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 중에서 ‘그 특정 명칭이 어떠하든’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본다면 어떤 합의가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인지 여부는 그 명칭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이는 설령 어떤 특정 합의가 MOU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2019년 MOU 제3조는 유엔 헌장 제102조에 따라 2019년 MOU가 유엔 사무국에 ‘등록’되어야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터키는 2019년 12월 5일 국내 비준 절차를 완료했고, 그 이후 유엔 사무국에도 등록을 위해 2019년 MOU를 송부했다. 2019년 MOU 내에 2019년 MOU를 유엔 사무국에 등록해야 한다는 조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절대적이지는 않을지라도 2019년 MOU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음을 강하게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터키와 리비아 양국은 왜 2019년 MOU의 실체가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임에도 그 명칭을 MOU로 만들었을까? 양국이 양국 간 합의의 명칭을 MOU로 붙인 이유에 대하여는 리비아 정부가 (국내 정치적 상황 때문에) 국내 비준 절차를 밟는 것을 회피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몇몇 언론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다. 즉, 리비아의 국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양국이 의도적으로 리비아의 국내 비준 절차를 무력화시키는 우회로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국의 편법적 기교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2019년 MOU는 그 명칭과 무관하게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2019년 MOU에 대하여 그리스, 이집트 등 주변 국가들의 반발이 상당하다. 2019년 MOU가 왜 주변 국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터키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싸이프러스(Cyprus)의 법적 지위 및 터키가 싸이프러스의 적법한 해양 권원 등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1974년 터키의 싸이프러스 침공 이후 터키가 점령하고 있던 싸이프러스의 북부 지역이 1983년 ‘북싸이프러스터키공화국’(Turkish Republic of Northern Cyprus, 약칭 ‘TRNC’) 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터키 이외에 그 어느 국가도 북싸이프러스터키공화국을 승인하지 않았다. 즉, 국제사회의 눈으로 보면 북싸이프러스터키공화국은 국제법상 국가로 간주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터키는 국가라 할 수 없고 터키의 점령 지역에 불과한 북싸이프러스터키공화국과 소위 ‘합의’ 등을 통해 싸이프러스의 북부 지역이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을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12해리에 이르는 영해만 가지는 것을 인정하는 등 국제법과 양립되기 어려운 조치를 취해 왔다. 그리고 동시에 터키는 (남부 지역만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싸이프러스의 지속적인 교섭 제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교섭에 응하지 않는 등 싸이프러스에 대하여 비우호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터키는 리비아와 전격적으로 2019년 MOU를 체결한 것이다. 즉, 터키는 싸이프러스가 지중해에서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을 가지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의 경계획정의 교섭과 관련하여 자신의 교섭 상대국은 오로지 지중해를 놓고 마주보고 있는 리비아 또는 이집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국가들 중 리비아와 2019년 MOU를 체결한 것이다.

2019년 MOU는 동지중해에 오로지 약 18.6해리에 이르는 직선 하나만을 설정했다. 얼핏 보면 이 직선 하나로 인해 동지중해 해양질서에 얼마나 큰 충격이 주어졌는지에 대하여 다소 고개가 갸우뚱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직선 하나는 그리스 또는 이집트의 200해리에 이르는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에 대한 권원을 거의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싸이프러스의 200해리에 이르는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에 대한 권원도 인정하지 않았다.

2019년 MOU는 그리스, 이집트 등 제3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에 대한 권원을 존중하지 않고 체결된 것이므로 한국 입장에서는 2019년 MOU에 대하여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지중해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혼란이 국제법에 따라 빠른 시간 내에 정리되기를 기대한다.

 

* 본 글은 2020년 3월호 해군지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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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