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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러·일 4강만큼 중요한 아세안 등과의 외교 다변화
지지세력 확보에 필요하지만 자기중심적 외교 벗어나…
상대국 역지사지 고려해야남중국해 문제 외면하면서 북핵제재 동참 요구 어려워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 참가했다. 참석한 동남아 국가들의 전문가와 학자들은 한결같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처음으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에 특사를 보낸 것을 평가하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우리 외교도 4대국(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을 넘어서 유럽연합(EU), 아세안, 아프리카 국가 등 외교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외교안보 현실을 고려할 때 4대국에 보다 큰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지만 외교 다변화를 등한시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외교 다변화는 크게 두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다변화를 통해 보다 많은 친구와 지지 세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전략적 자산을 통해 주변 4강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를 강화할 수 있다. 특히 갈수록 심화되는 미중 갈등과 경쟁 속에 있는 우리로서는 최소한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완충장치가 필요하고, 이는 외교 다변화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강대국이라 해도 많은 지지 국가와 독자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외교 다변화는 협력 대상의 확대뿐만 아니라 협력 분야의 확대도 포함해야 한다. 정치 외교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통상 그리고 사회 문화 분야에서의 실질적인 협력을 증진하여 공동 성장과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한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을 감소시켜 대체재 혹은 안전판을 만드는 효과도 있다. ‘외교의 분산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외교 다변화 대상 국가들이 한국에 주문하는 사항들을 보면 이를 추진할 때 유의점을 알 수 있다. 먼저 한국이 평소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만 찾아와서 한국을 지지하거나 도와달라는 요구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ASEAN Regional Forum)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리는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 북한을 규탄하고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반대로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답, 예를 들어 남중국해 문제에 관한 입장 표명은 되도록 회피한다. 우리에겐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이 요구를 받는 국가들은 이런 요청을 부담스러워한다. 평소에 이들과 협의하고 협력하는 등 인적 제도적 네트워크 형성과 심화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다른 뼈아픈 지적은 한국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접근보다는 자기중심적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대상국의 관심사나 관점보다는 자기의 관심사와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지원을 하고도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선심성 혹은 시혜적인 접근이나 우리의 관점을 강요하려는 듯한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 자기중심적 접근은 부작용을 가져올 따름이다.

대상 국가나 지역의 특성과 필요에 맞도록 한국의 외교적 접근을 조정하고 정교화하는 현지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과 국가 그리고 해당 이슈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외교정책 수립과 집행에 있어 지역 및 기능 전문가와의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대상 지역에서 개최되는 주요 전문가 회의나 정부 간 회의에 참여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해당 지역 및 분야에 관한 전문성을 축적해야 한다.

외교 다변화 전략의 성공을 위해서는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의 방향성이나 사업의 내용이 변하고 관심도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일은 되도록 없어야 한다. 물론 상황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급작스러운 변화는 없어야 한다. 이는 단기적 사업보다는 중장기적 사업을 추진하여 정부가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확충하는 것으로 보완할 수 있다.

또한 외교 다변화는 외교부만의 일이 아니다. 정부 각 부처는 분야별로 대외협력 사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밥그릇 챙기기와 충돌이 발생한다. 이를 방지하고 외교 다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범정부적 차원에서 조정과 조율이 이루어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외교 다변화가 거창한 구호로 끝나지 않고 일관되게 추진되어 한국이 국제사회의 믿음을 얻고 책임감 있는 세계의 친구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 본 글은 8월 8일자 동아광장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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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최강

연구부문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부원장이자 수석연구위원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