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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과 필리핀 관계에 잇단 파열음이 나고 있다. 필리핀은 한국, 일본, 호주, 태국과 함께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관여를 뒷받침 하는 미국의 동맹국이다. 냉전이 끝나고 미군 기지가 필리핀에서 철수한 후에도 유지되었던 끈끈한 군사동맹 관계가 새 대통령 두테르테 (Duterte) 취임 후 잇단 고비를 맞고 있다. 필리핀-미국 관계의 악화는 상대적으로 중국에게는 호재로 작용한다. 하지만 미국-필리핀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가고 필리핀과 중국 관계 개선이 아태 지역에서 중요한 전략적 변수로 부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7월 취임한 두테르테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실제 공약을 이행하면서 필리핀 국내에서 90% 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적법한 절차는 생략된다. 경찰 뿐 아니라 사법권을 갖지 않은 자경단까지 나서 마구잡이식 마약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재까지 약 4,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약소지, 판매로 몰려 적법 절차를 따르지 않은 채 살해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일어나는 인권 침해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라오스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 직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필리핀 마약과의 전쟁에서 벌어지는 인권 문제에 대한 코멘트를 한 이후 미국과 필리핀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코멘트에 대해서 욕설로 답을 했다. 예정되었던 양국 정상간 회의는 곧바로 취소되었다. 더 나아가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과의 군사 훈련을 중단하고, 필리핀 민다나오에 파견된 미군을 내쫓을 것이며 미군 기지의 필리핀 재주둔을 허용하는 협정도 파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매우 충동적이고 돌출적인 외교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틈을 타 중국은 미국의 내정간섭을 비판하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경제지원을 앞세워 필리핀과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도 내정간섭하는 미국 보다 마약과 전쟁을 지원하는 중국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남중국해 문제를 국제중재법정으로 끌고 가 중국을 당혹하게 했던 필리핀과 중국 사이에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찾아왔다.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에서 가장 중국에 비판적인 필리핀과 베트남 두 국가 중에서 필리핀을 돌려 세울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이대로 미-필리핀 관계는 파탄나고 대신 중-필리핀의 밀월이 시작되며, 아태 지역에서 미-중 경쟁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인가? 두테르테는 제 2의 우고 차베스가 될 것인가?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커 보이지는 않는다. 먼저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금과 같은 행보가 지속되기 쉽지 않다. 필리핀 내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지속되고 그 바탕 위에 자신의 방식대로 대미 관계, 외교정책을 펼쳐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국내적으로 인권 문제, 예측할 수 없는 외교 행위로 인한 반감이 기득권층, 중산층, 지식인층의 이반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두번째로 필리핀이 중국과 밀월관계에 들어간다고 해서 미국에게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필리핀은 상징적으로 남중국해 문제에서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미국의 군사력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남중국해 문제에서 필리핀은 거의 일방적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필리핀 외에도 군사적 presence를 강화하기 위한 대안들이 많다. 이미 미국은 싱가포르에 미 해군의 활동을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Navy Regional Center를 운영하고 있다. 브루나이에 훈련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베트남과 미국의 군사협력은 하루가 다르게 강화되고 있다. 필리핀을 잃더라도 전력상 누수는 크지 않을 것이다.

세번째로 중국과 필리핀 사이에 형성되는 우호적 관계도 한계를 보일 것이다. 중국이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에 대해 두둔하는 것 외에, 필리핀은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인프라 건설을 도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국내적 지지 기반을 확장할 계산이다. 그러나 중국의 필리핀 지원도 한계는 있다. 제한된 경제적 자원을 가지고 매우 낙후된 필리핀의 인프라 상황을 단기간 내에 획기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희망일 뿐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가진 중국에 대한 경제적 기대는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 본 블로그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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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장이며 아세안-대양주 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