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2018년 말 이후, 악화일로의 한일관계에 전환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지난 12월 24일 제8차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 개최된 한일정상회담이었다. 1년 3개월여만에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강제동원문제, 일본의 수출규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 파동 등 거듭되는 갈등상황에 대해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갈 것에 합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상회담 이후 현재까지 한일관계는 특별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고, 갈등의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 지난 2월 6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일 외교당국 국장급 협의에서도 양국은 원칙적 입장의 차이만을 확인했을 뿐, 내용적 측면에서의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1 더욱이 최근 GSOMIA 폐기론이 재부상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이어지고 있어2 한일관계의 난관이 예상된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일본기업 자산의 현금화 조치가 이루어질 경우, 한일관계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될 우려가 크다. 이에 본 고에서는 2012년 말부터 지난 1월 20일까지 8번에 걸친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시정방침연설」3 을 비교·분석함으로써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식 및 태도의 변화 여부를 파악하고, 향후 한일관계의 전망과 정책적 고려사항을 제시하고자 한다.

 

■ 아베 내각의 對한국외교 방침의 변화와 연속성
: 2013-2020 아베 총리의 「시정방침연설」을 중심으로

지난 1월 20일, 제201회 일본 국회에서는 2020년 한 해의 국정운영방침을 설명하는 아베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시정방침연설」이 있었다. 매년 정기국회 첫머리에 행해지는 총리의 「시정방침연설」은 일본의 내정·외교 관계 전반에 대해 설명하며 한 해 내각의 공식적인 국정운영방침을 밝히는 것으로서,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기본 자료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이러한 점에서, 그동안 우리는 일본에서 「시정방침연설」이 발표되면, 일본이 한국에 대해 어떠한 표현을 사용했는지에 주목했다. 실제 매년 발표되는 「시정방침연설」에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조금씩 다른 표현을 사용했다. 구체적으로, 북핵위협이 증대되던 시기 2013, 2014년도 발표에서 한국과의 전략적 이익 공유와 대국적 관점에서의 협력을 강조하거나, 2015년 위안부합의에 대한 국내외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일본의 방침을 재확인한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시정방침연설」이 한국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 해 일본외교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전체 연설 속에서 일본이 한국을 어떻게 위치시키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정책을 어떠한 방침을 가지고 시행해 나갈 것인지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외교 속 한국의 위치

일본의 「시정방침연설」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타 국가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높은 편은 아니다. 아래 [표1]는 2012년 12월 아베 총리 2차 집권 이후, 「시정방침연설」중, 주변국에 대해 언급한 것을 조사한 것이다. [표1]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일본의 「시정방침연설」에서 미국·일미 관계에 대한 언급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은 중국, 북한, 러시아이며, 한국에 대한 언급은 평균 2회 미만으로 가장 적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등으로 인해 동북아 정세가 위기 상황에 놓여있을 때, 미일관계의 견고함과 미일동맹 등을 수차례 강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 대한 언급은 주로 동북아 안보정세 속에서 전략적 이익의 공유, 혹은 동아시아 평화 번영의 일환에서 논의되고 있다. 즉, 한일 양자관계에서의 대한국외교보다 일본의 대동아시아, 대한반도외교 속의 대한국외교에 대해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표 1] 아베총리의 「시정방침연설」 중, 주변국에 대한 언급 빈도(2013-2020)4

표1_아베총리의-시정방침연설-중-주변국에-대한-언급-빈도2013-2020

출처: 각 년도 시정방침연설 참조하여 필자 작성.
※ 평균은 소수 둘째자리에서 반올림

 

2020년 「시정방침연설」, 무엇이 달라졌나?: 6년만에 부활한 한국과의 기본적 가치 공유보다 주목해야 할 일본의 태도

올해 아베 총리의 「시정방침연설」 중, 한국에 대한 언급에서 주목받은 부분은 한국을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국가’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한 것이다. ‘기본적 가치 공유’에 대한 언급은 2014년 이후 6년, “전략적 이익 공유”와 ‘중요한 이웃국가’는 2017년 이후 3년 만이다(아래 [표2] 참조). 지난 2018년과 2019년 시정방침연설에서 한국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여 볼 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의 부활을 문제해결을 위한 일본의 태도 변화와 한일관계 개선 의지로 평가하기는 섣부르다.

[표 2] 2차 아베내각 이후, 시정방침연설 中 한국관련 내용 (2013-2020)

2차 아베내각 이후, 시정방침연설 中 한국관련 내용 (2013-2020)

출처: 각 년도 시정방침연설 중 관련부분 발췌 및 필자 작성

「시정방침연설」에서 한국이 중요하다는 표현 속에 숨은 의도와 일본이 정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원래”라는 표현과 전후 문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시정방침연설」에서 일본은 한국을 “즉, 달라진 것은 한국이지, 일본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더욱이 뒤이어 나온 “그렇다면 국가와 국가간의 약속을 지키고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를 구축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であればこそ, 国と国との約束を守り, 未来志向の両国関 係を築き上げることを, 切に期待いたします.)”라는 표현은 기존에 제시되어 온 ‘협력’, ‘노력’, ‘대화’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즉, 2013년 연설에는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하였고, 2014년 연설에서도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였으며, 2015년 연설에서는 “관계개선을 위해 논의를 거듭”하겠다고 하였다. 2016년, 2017년, 2018년에도 “협력관계 구축”, “협력관계 심화”, “긴밀히 제휴”라는 표현을 통해 한일관계 발전을 위한 일본의 노력이 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올해 연설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 다시 말해, 기존까지 일본은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협력하겠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지를 표명하였지만, 올해 연설에서는 “일본은 달라진 바가 없으니 일본의 노력이 아닌, 한국의 노력과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표현을 부활시키며, 유화적 태도로 선회한 것처럼 보이나, 이 또한 기존에 사용했던 표현을 재사용한 것으로 새로운 표현은 아니다. 오히려 유화적 표현 속에 실제로 내포된 의미는 “현재 악화된 한일관계의 원인과 책임은 한국에게 있으니 한국이 노력하라”는 강경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지난 1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본도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답변에 대한 응답으로 문제 해결은 한국이 해야한다는 의미를 재차 확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020 일본외교와 한국: 「시정방침연설」속에 담긴 복잡한 셈법

앞서 언급하였듯, 일본은 이번 「시정방침연설」에서 기존에 이미 한국에 대해 사용했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의 공유’를 부활시키며, 한일관계 개선의 의지를 표명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유화적 표현 속에 담긴 실질적 내용은 양국 갈등사안에 대한 일본의 기본원칙은 달라지지 않았으니, 관계 개선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은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는 강경한 속내를 전했다. 표면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강경일색이었던 지난 한 해 일본이 보여준 모습에서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누그러워진 셈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대외적으로 올해 일본의 가장 큰 이벤트인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이후 한국인 관광객 감소, 한국의 일본상품 보이콧 등을 경험하였다. 아래 [그림1]과 [그림2]에서 나타난 것처럼 방일한국인은 전년도 동월대비 60% 이상의 감소율을 보이고 있고, 한국의 일본상품 불매운동도 지속되고 있다.

[그림 1] 방일외국인 및 방일한국인 수 (2018-2019) (단위: 명)

방일외국인 및 방일한국인 수 (2018-2019)

출처: 일본정부관광국(https://www.jnto.go.jp/) 자료 참조·필자 재구성

[그림 2] 2019년도 방한일본인 및 방일한국인 전년도 동월대비 비율 변화 (단위: %)

2019년도 방한일본인 및 방일한국인 전년도 동월대비 비율 변화

출처: 출처: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 및
일본정부관광국(https://www.jnto.go.jp/) 자료 참조·필자 재구성

이러한 움직임이 일본 경제 전체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은 매우 크지는 않으나, 한국 관광객이 주로 찾던 일본 지방소도시의 경제적 피해가 적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예상치 못한 한국의 반응에 대한 충격이 작지 않았다.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한일관계 악화방지와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더욱이 성공적인 도쿄올림픽 개최를 위해 주변국의 협조는 필수적이라는 계산이다. 한일관계 개선이 목표가 아닌, 수단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점이다. 또한, 동북아지역의 안보정세 속 한일협력의 필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미중간의 세력경쟁이 치열해지고, 중국의 세력확장에 따른 위협, 그리고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일 공조 속에서 한국과의 협력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과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의 공유는 재차 강조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대내적으로 아베 내각의 확고한 입장과 원칙 표명을 통해 강한 이미지를 구축하며, 국내적 지지를 받기 위함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베 내각은 지난 해 말부터 불거진 ‘벚꽃스캔들5’, ‘경제산업상과 법무상의 선거법 위반6’, ‘카지노스캔들7’ 등 연이은 악재로 지지율이 하락하며, 국민들의 실망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지한다’ 44%, ‘지지하지 않는다’ 38%, 2020.1.15. 기준8). ‘벚꽃스캔들’로 당장 정권이 무너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사안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회피하는 모습에 국민들의 실망이 커져가고 있고(<지지통신 여론조사> ‘아베총리의 설명에 납득한다’ 6.6%, ‘납득하지 못한다’ 79.1%, 2020.1.10.-1.13 조사기준9, 장기집권으로 인한 도덕성 저하에 대한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 사회 내부의 분위기는 정권에 대한 지지와 강한 추진력을 기반으로 헌법개정 등을 이루려하는 아베 정권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내부적 불만을 잠재우며, 보수 세력으로부터의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강경한 태도와 원칙 고수가 필요하다. 한국과의 관계도 이러한 맥락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즉, 표면적으로는 유화적으로 표현하되, 일본이 먼저 적극적인 관계개선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과 문제 해결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고, 일본내 국민여론도 유화적이지 않기 때문이다(<닛케이신문 여론조사> ‘일본이 양보하면서 한일관계개선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69%, ‘관계개선을 위해 일본이 양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21%, 2019.11.24. 기준10). 따라서 한일 갈등사안에 대한 표면적으로는 유화적이되, 실질적으로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며 관계를 관리하는 모습을 취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 다가오는 과제들과 정책적 고려사항

현재의 한일관계가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가운데, 향후 전망도 낙관적이지는 않다.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갈등사안들이 산재해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깝게는 다가오는 2월 22일, 일본의‘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현)의 날(竹島の日)11’ 행사로 인해 양국 갈등이 이슈화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지난 1월 말, ‘영토·주권 전시관’ 확장·이전 개관식이 열린만큼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는 것은 계속될 것이다. 3월에는 한국의 3.1절 대통령 기념사에서 한국이 일본에 대해 어떻게 언급하는지가 주목받을 것이며, 4월 15일로 예정되어 있는 한국의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일본문제가 쟁점화될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더욱이 상반기에는 일본기업 자산의 현금화 조치도 예상되고 있다. 소위 레드라인(red line)이라고 불리는 현금화조치가 시행되면, 한일관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불가피하다. 이후 다가오는 7,8월은 도쿄올림픽의 시작과 함께 욱일기 문제가 다시 부각될 것이다. 욱일기문제로 인해 실질적인 피해 혹은 경제적 손해가 나타나기는 어렵지만, 이로 인한 양국간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문제로 갈등이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 이후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으로 사실상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12, 이것이 현실화되면 환경오염과 해양안전 뿐만 아니라, 수산업을 비롯한 관련업계의 피해, 인간의 건강과 생명까지 위협하는 결과가 예상되어 양국갈등은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일간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강제동원문제①: 국내적 이해와 지지를 기반으로 한 일본과의 협의 노력 필요

무엇보다도, 현재의 한일갈등의 뇌관인 강제동원문제에 대한 해결이 시급하다. 문제가 불거진 2018년 10월말부터 1년 3개월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 해당 사안에 대한 해결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6월 19일 우리 정부가 제시한 ‘1+1(한국기업+일본기업)안13’,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시한‘1+1+α(한국기업+일본기업+국민성금)안’, 한일 시민사회단체와 피해자 변호인단이 제시한 ‘한일 공동협의체 구성안’등 다양한 해법 등이 제시되었으나, 실질적인 진전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의‘1+1안’이 발표된 직후, 일본 정부는 바로 수용불가하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문희상안’에 대해 일본측은 기대감을 보였으나, 한국내 피해자 및 관련단체 등의 반발과 여야 정쟁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시민단체와 피해자 변호인단이 낸 ‘공동협의체안’에 대한 일본의 움직임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일본도 답을 찾아야 한다’는 한국정부의 인식과 ‘한국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일본정부의 인식 차이로 문제 해결은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전제는 우선 국내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案)들이 제기되는 가운데 우리 안의 일치된 해법은 여전히 요원하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은 제시되어 있지만, 피해자들과의 협의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곧 국내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일본과의 협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따라서 피해자들 및 관련단체들과의 지속적인 논의 및 협의를 통한 국내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문희상안’이 일본과의 협의에서 유리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볼 수 있다면, 해당 안을 통한 피해자 구제안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과 비전을 통해 피해자들의 이해와 지지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15 위안부합의」를 통해 피해자들을 배제한 합의가 가져올 사회적 반감과 결과의 위험성에 대해 우리는 이미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해당 사안의 이해당사자는 물론 관련 분야의 전문가 및 현인(賢人)들을 중심으로 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사회적 논의의 활성화를 지속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국내적 이해와 지지를 기반으로 일본과의 협의를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강제동원문제②: 현금화조치 이후의 상황악화에 대비한 시나리오별 플랜B 마련

동시에, 한국내 일본기업 자산의 현금화조치 이후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일간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현금화조치는 유예되는 것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방법이지만, 현금화조치를 막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이미 현금화 조치가 이루어지면 보복조치의 일환으로 한국에 대한 관세인상, 송금정지, 비자발급 정지 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일들이 현실화될 것이라 보기 어렵지만, 그에 상응하는 경제보복조치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지난 7월 수출규제 이후, 한국의 대규모 보이콧을 경험한 일본은 지난 번과 다른 형태의 보이지 않는 보복을 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일본의 한국에 대한 투자감액, 자금유출 등 금융권에서의 압박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지난 7월 한국의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것과 달리, 중소기업들 혹은 잠재적 성장가능성을 갖춘 인적·물적 자원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해 우호협력국으로서 내던 목소리를 낮추고, 각종 국제협력사업에서 한국에 대한 상대적 비중을 낮출 가능성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추진하는 북한문제를 포함한 대외정책에 비우호·비협력적인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즉, 눈앞에 보이는 직접적인 위협보다 보이지 않는 타격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할 때,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부족한 자금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 중소기업지원정책 등 각종 시나리오에 대비해 놓을 필요가 있다. 외교안보적으로도 우리의 정책이 갖는 한반도·동북아, 나아가 세계적 의의를 충분히 알리고, 역사문제가 다른 분야로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등으로 경기침체가 매우 우려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보복으로 우리의 경제적 피해와 심리적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갈등의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욱일기와 후쿠시마 원전수 문제: 다가올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책 마련

다가오는 여름 도쿄에서 개최되는 2020 도쿄올림픽은 전세계인의 축제이자, 일본에게 있어 올 한 해 가장 큰 이벤트이다. 이웃국가인 한국도 도쿄올림픽에 따른 경제적 낙수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방문객의 증가에 따른 관광산업의 활성화와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늘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외교를 통한 한일간의 협력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쿄올림픽의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도쿄올림픽에서의 욱일기 사용 문제가 이슈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욱일기를 자위대기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일부로 스며들어 있어 문제시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의 군국주의, 제국주의, 배외주의 등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논란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사용을 금지하는 강제성을 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의 해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일본에서의 문제인식이 낮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인식의 전환을 꾀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일방적인 비난보다 일본 스스로 자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방향 설정이 필요할 것이며,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문제제기 보다는 한일 시민사회 연대, 학자간 교류 등을 통해 점차적인 인식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이후의 실질적·경제적 피해에 대해 보다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하였듯, 그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인접국인 우리나라의 실질적·잠재적 피해는 불가피하며, 불안감 또한 쉽게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극심한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국가들이 함께 초국가연합회의체 등을 만들어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일본의 정확한 정보전달은 물론이고,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한 원자력안전협의체의 실질적 협력 활성화와 비상대비 정보공유화 협력체제 구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14 특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유출관련 환경방사선/환경방사능 분석결과 및 인근 해수 방사능 농도 등 관련 정보를 꾸준히 제공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가교류 및 기술협력 등 공동의 노력과 지원을 계속해 나갈 필요가 있다.

‘정책공공외교’ 강화를 통한 상호이해 증진

정치적인 문제와 무관하게 일본내 K-POP, 한국음식, 한국문화 등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20,30대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한국과의 교류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문화를 통한 한일간의 친밀감 상승은 여전히 기대할만하다. 하지만 한일 문화교류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 발생한 다양한 갈등사안으로 한일간의 친밀감은 오히려 낮아졌으며, 이해의 폭도 넓지 않다. 문화의 힘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표면적인 관심과 친근감이 내면의 이해와 화해로 이어지기까지는 추가적인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일관계 개선과 인식 전환을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 전달과 갈등의 본질을 분석하고,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비단 일본 국민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재외동포, 그리고 전세계 국가들을 상대로도 필요하다. 우리 정부의 입장과 정책 방침에 대해 일본국민 뿐만 아니라, 국내 그리고 일본 안팎의 우리국민들에게조차 제대로 전달되거나, 이해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내 생활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은 일본내 한국에 대한 이해 증진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조차 우리 정부의 방침과 입장이 이해와 지지를 얻고 있지 않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 이에 더하여, 한일관계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실질적으로 분석하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내외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세대별·지역별·분야별 오피니언 리더와 전문가들을 타겟으로 한 공공외교에 집중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로 인해 잘못된 오해를 불식시키고, 한국이 지향하는 바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동북아 나아가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한 노력이 좀 더 세심하게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문화적 친밀감을 넘은 정책적 이해와 갈등의 해소를 위한 ‘정책공공외교’가 필요한 이유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최은미
최은미

부연구위원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2007),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2009), 박사 학위(2015)를 취득하였다.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 미국 미시간대학교(2012-2013)와 일본 와세다대학교(2013-2014)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2015),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2016-2018),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2018-2019)로 재직하였다.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최근 연구로는 <국가정체성을 통해 본 한일갈등 인식의 차이 연구(2018)>, <일본의 대아시아전략과 한중일 3국관계(2018)>, <협력과 갈등의 한일관계, 20년의 변화와 성찰(19998-2017(2018))>, <일본은 여전히 ‘반응형 국가’인가? 아베 내각에서 나타난 일본외교의 변화와 연속성(2019)>,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