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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시작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미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야기한 위기가 정상회담의 기회를 만든 만큼,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의제가 ‘북핵폐기’여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토대로 이번에는 북한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핵문제를 담판지어야 한다는 국내외의 열망이 컸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이 열릴 당시 북한이 제네바 기본합의를 위반하며 다른 경로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경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핵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열린 노무현-김정일 회담에서는 핵문제를 6자회담으로 미뤄놓고 막대한 경제지원을 약속한 10·4 선언에 합의했었다.

우리 정부는 2018년 초 ‘골디안의 매듭’(Gordian Knot)을 끊겠다며 쾌도난마식 일괄타결에 대한 의욕을 보였지만 이후 중재자와 당사자 입장을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외교부장관이 신고와 검증을 앞세우면 협상이 실패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후퇴했다. 이 발언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최대압박 정책이 북한을 대화로 끌어냈다며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의 CVID를 최단시간 내에 실현하겠다던 트럼프 행정부도 수십 년 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면서 단기간에 해결이 어려움을 인정한 데 이어 시간과의 싸움은 하지 않겠다며 뒤로 물러섰다.

북핵협상의 종착역은 북한이 한국처럼 완전히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에 비핵회원국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일련의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탈퇴했던 NPT에 복귀할 것인가에 대한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이 현재 북핵협상의 가장 큰 문제이다. 이런 상황이 초래된 데는 지난 30년간 한미 양국을 기만하고 괴롭혀왔던 ‘비핵화’(Denuclearization) 용어를 둘러싼 혼란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두 사람이 똑같은 모자를 썼지만 전혀 다른 인물인 것처럼 한미와 북한이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주장하는 바가 판이하다는 것이 근본문제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의 핵심 목표는 주한미군의 한반도 축출과 한미동맹 와해인 반면, 한미의 비핵화는 남북한의 핵개발 포기가 목표이다. 한미가 북한의 용어혼란 전술에 말려들었기 때문에 지난 30년간 비핵화 협상은 해결은커녕 악화일로를 걸어왔고 지금도 같은 실패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Ⅱ. ‘비핵화’(Denuclearization) 외교의 실패

1.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와 한반도의 ‘비핵화’

냉전시기 對소련 견제 차원에서 미국이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한 195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거론했고, 1980년대 들어서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1980년 10월 개최된 제6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은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의 구체적 실천조치로 조선반도의 비핵‧평화지대화를 제안했다. 1990년 5월 31일자 군축안은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주장하면서 ①남한內 모든 핵무기의 즉시 철수를 위한 공동 노력, ②핵무기의 생산‧구입 금지, ③핵무기를 적재한 외국 비행기와 함선의 한반도 출입‧통과 금지를 제안했다.

남북한이 핵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1991.10.22∼25)에서 북한은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선언을 제시하며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에 초점을 맞춘 다음 7개항을 요구했다: ①핵무기의 실험‧생산‧반입‧보유‧사용 금지, ②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비행기‧함선의 한반도 출입‧통과‧방문 금지, ③핵우산을 보장하는 조약과 핵무기의 저장‧배치 금지, ④핵무기가 동원되는 군사훈련 금지, ⑤주한미군과 핵무기의 철수, ⑥IAEA의 북한 핵시설 사찰과 북한의 남한 군사기지 사찰 동시 실시, ⑦핵국들에 대한 핵위협 금지 및 비핵지대 지위 존중 요구.

이후 한국은 북한의 비핵지대화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방안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노태우 대통령이 11월 8일 남북한의 핵개발 포기에 초점을 맞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다. 비핵화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이 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원자력을 평화적 목적으로 이용, ②핵무기의 제조‧보유‧저장‧배비‧사용을 금지하는 비핵 5원칙 준수, ③NPT와 IAEA 보장조치협정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 ④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의 보유 금지, ⑤기타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

1991년 12월 10∼13일 개최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지만 핵문제에 진전이 없다는 내외의 우려를 반영하여, 남북한은 1991년 12월 26일 핵문제를 위한 대표접촉을 판문점에서 개최했다. 여기서 북한은 기존의 비핵지대화 주장을 철회하고 한국의 입장을 대부분 반영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제시했다. 비핵화라는 한국의 용어를 수용한 것은 물론 재처리‧농축시설의 포기를 포함시켰고, 핵우산 보장협정 금지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비행기와 함선의 출입‧통과‧방문 금지도 제외했다. 남북한은 몇 차례의 협상 끝에 1991년 12월 31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하며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①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금지하는 비핵 8원칙 준수, ②평화적 목적으로만 원자력을 이용, ③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 보유 금지, ④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에 대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 실시, ⑤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구성‧운영.

비핵화는 북한의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 공세에 대응해서 한미 양국이 만들어낸 용어이다. 남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되 한미동맹에는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 비핵화의 본래 취지이다(<표 1> 참조). 냉전종식으로 정권수립 이후 최대위기에 몰린 김일성이 국제사회의 핵개발 포기 압박에 직면해서 국면타개책으로 한미의 비핵화 용어를 수용하고 한국의 의견이 대부분 반영된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외견상 핵개발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후퇴하면서 상대의 용어까지 차용한 것이다. 비핵화 공동선언 협상에 참여한 김영철 現통일전선부장이 90% 한국의 안을 수용했으므로 “이것은 당신들 협정이지 우리 협정은 아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북한은 대폭 양보했었다. 그러나 모자만 비핵화로 바꿔 쓴 북한의 말과 행동은 그대로 비핵지대화였다. 전술적 후퇴를 위해 수용한 비핵화 용어를 공세적으로 역이용해서 한미를 기만하여 시간을 벌고 보상을 챙기면서 핵개발에 성공했다. 제네바 기본합의, 9·19 공동성명, 2·13 합의 등 주요 합의마다 비핵화란 간판으로 핵포기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핵심 목표인 주한미군 축출과 한미동맹 와해를 포기한 적이 없다. 반면에 한미는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가 한미가 추구하는 남북한의 핵포기일 것으로 믿고 초기에는 경제·외교·안보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북한을 설득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경제·외교적 제재를 통해 핵포기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표 1>: 김일성의 유훈인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와 한미의 대응책인 ‘한반도 비핵화’

표 1_김일성의 유훈인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와 한미의 대응책인 ‘한반도 비핵화'

 2. 북한의 ‘비핵화’ 용어혼란 전술

북한은 비핵화로 간판을 바꿔달았지만 김일성의 유훈인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전략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 우선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위한 협상에서 외부로부터 강요된 핵위협을 공동으로 저지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 담보를 받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자고 제의했다. 1992년 3월 19일 개최된 제1차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회의에서는 비핵화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이행합의서를 제시하며 3개월 전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 당시 철회했던 비핵지대화 주장을 그대로 부활시켰다 (<표 2> 참조). 북한은 핵문제를 고리로 시작된 미북고위급회담에서도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예를 들어, 1993년 6월에 개최된 제1단계 미북고위급회담에서 강석주 대표는 미국에 대해 팀스피리트 훈련 영구 중지, 주한미군기지 사찰 수용, 대북 핵무기 불사용, 대남 핵우산 제공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했다. 2016년 공화국 정부대변인 성명도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며 남한의 핵폐기와 남한 주변의 비핵화가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5개항의 안전담보 사항을 요구했다.

북한은 지금까지 비핵화라는 용어를 매개로 한미가 북한의 핵포기에 대해 환상을 갖도록 프레임을 설정하고, 한편으로 핵개발에 매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한미를 상대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관철하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했다. 비핵지대화의 구성 요소들을 한미가 북한 비핵화를 위해 수용해야 할 조건으로 요구하면서 한국의 핵개발 포기, 주한미군의 한반도 축출 및 한미동맹 와해를 실현하려는 북한의 전략은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 2018년 3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제시한 비핵화 실현의 조건, 즉 “한미가 북한의 선의에 응해서 평화와 안정의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실현을 위해 점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도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실현하겠다는 의미이다.

<표 2>: 김일성의 유훈에 기초한 북한의 비핵화 국가전략 진화 과정

표 2_김일성의 유훈에 기초한 북한의 비핵화 국가전략 진화 과정

북한이 추구하는 비핵화 국가전략의 목표는 단기적으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고 장기적으로 북한 주도 통일에 우호적인 여건을 만들며 궁극적으로 통일을 실현해서 체제대결을 승리로 끝내자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한미 양국을 한반도 긴장과 전쟁의 원인으로 비난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연막 형성

–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구실로 핵개발을 정당화

– 비핵화 국가전략 하에 김일성의 유훈인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관철

북한이 핵위협 제거, 적대정책 청산, 체제위협 해소, 안전담보, 체제보장 등 다양한 구실을 들며 비핵화 국가전략을 추진하면서 달성하려는 목표는 다음 세 가지이다.

– 한국의 핵무기 개발 저지

– 주한미군의 약화 및 궁극적인 철수

– 정전협정의 무력화 및 한미동맹 와해

3. ‘서희 담판’에 대비되는 비핵화 외교 실패

한미 양국은 비핵화를 외교적 차원에서 추진해왔다. 한국은 외교부가 주무부서가 되어 비핵화 협상을 주도했고 6자회담을 진행하면서 한반도평화교섭본부라는 차관급 직책을 신설해서 북핵협상을 전담하도록 했다. 미국도 국무부를 중심으로 대북협상을 진행해왔으며 최근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된 비건(Stephen Biegun)도 국무부 소속이다. 북한의 핵개발 사실이 알려진 1991년 한미는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선제 조치를 취했다. 한국이 핵무장을 포기하는 비핵화 선언을 했고 미국도 한국에 배치되어 있던 전술핵무기를 모두 철수했다. 이를 통해, 박정희 정부 이후 지속되었던 한국의 핵개발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었고, 북한이 1950년대부터 줄곧 주장해온 미국의 핵전력 제거도 실현되었다. 한미가 선제적으로 북한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핵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겠다는 선의를 보임으로써, 북한도 상응하는 조치로 보답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비핵화 공동선언이 실패로 끝나고 미국이 개입해서 미북 공동성명을 시작으로 체결된 후속 합의에서도 한미는 북한에 대해 정치, 외교, 경제, 안보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서 북한의 핵포기를 설득하는 비핵화 외교를 고수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부과된 유엔안보리 제재와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압박 정책도 보상이 제재로 바뀌었을 뿐 핵포기를 설득하는 비핵화 외교의 연장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핵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비핵화 외교를 통해 제공하는 보상의 규모와 범위도 점점 커졌고 그에 비례해서 합의문의 분량도 많아졌다 (<표 3> 참조).

<표 3>: 대북 보상증가에 따른 합의문건의 분량 증가 추세 (단어 수)

표 3_대북 보상증가에 따른 합의문건의 분량 증가 추세 (단어 수)

비핵화 외교를 관통하는 대북 설득과 보상의 논리는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고 당근을 제공해서 북한을 안심시키면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초기에는 정치·외교적 관계개선과 경제지원에 머물던 보상이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됨에 따라 군사·안보적 보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정부의 논리도 소위, ‘선순환’(virtuous cycle)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사용했던 것이다.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해 정부가 제기한 주장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비핵화 외교의 실패로 검증이 끝난 과거의 논리인 것이다.

반면에 북한은 1992년 이후 한반도의 안보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김일성시절부터 추진해 온 국가전략, 즉 김일성의 유훈인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비핵화로 포장해서 추진하고 있다. 1990년 제시한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을 기반으로 한미의 비핵화 용어를 차용한 1992년 조선반도 비핵화 이행합의서를 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용어혼란 전술을 구사하며 비핵화 국가전략을 추진하게 된다. 이후 제네바 기본합의, 9·19 공동성명 등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한미를 상대로 대북 핵위협 제거, 적대정책 해소, 안전보장, 체제보장 등으로 포장한 논리와 명분을 내세우며 비핵화 국가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2016년 7월 북한이 정부대변인 명의로 발표한 공화국 성명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표현이 바뀌고 용어가 달라졌을 뿐이다.

한미 양국의 비핵화 외교는 지금까지 이중의 실패를 겪었는데 하나는 북한의 핵보유를 막지 못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핵화 외교를 추진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국가전략에 말려든 것이다.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볼 때,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실패가 더 심각한 문제이다. 첫 번째 실패를 깨닫고 북핵에 대응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상책인데 그렇지 못하고 북핵위협에 무방비 상태에서 핵포기를 생각도 않는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 외교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2018년 현재 비핵화 외교 실패의 폐단은 극에 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핵무장을 포기한 상황에서 재래식 전력이라도 증강해서 북핵에 대응한 억지력을 갖춰야 하는 데 오히려 재래식 군비통제를 진행하고 있다. 역대 진보, 보수 정부에서는 북한의 핵개발을 의식해서 남북관계 개선도 조심스럽게 추진했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을 일방적으로 중단했고, 폼페오 국무장관이 북한에 대해 ‘전례없는’(unique)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고 공언했으며, 던포드 합참의장도 미북대화 진전을 전제로 한반도 군사태세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결국 북한이 지난 30년간 집요하게 추진해 온 비핵화 국가전략의 세 가지 목표(①한국의 핵개발 저지, ②주한미군 약화와 철수, ③한미동맹 와해)가 관철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며 바로 비핵화 외교 실패의 현주소이다(<표 4> 참조).

<표 4>: 북한 비핵화 국가전략이 관철된 증거

표 4_북한 비핵화 국가전략이 관철된 증거

 

Ⅲ. 한국의 ‘핵군축 국가전략’

1. 한반도 비핵화 시대의 종언

북한이 美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핵미사일 개발의 막바지 단계에 들어선 2017년은 한국의 안보상황이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전환기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해였다. 재래식 대결 시대를 거쳐 북한에 의한 核독점 시기에 들어선 한반도가 남북한간 상호 核억지를 통한 核균형 시대로 들어서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것이다.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은 한반도가 남북간 ‘재래식 균형 시대’에서 북한에 의한 ‘核독점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서막이었고, 2017년 7월 ICBM 발사와 9월 수소탄 실험은 한미동맹이 창설 이후 최대의 도전에 직면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북한이 美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핵미사일 개발에 근접함으로써 한반도 유사시 한국을 지원하려는 미국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는가 하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북한의 核독점 시대에 미국의 對韓 방위공약에 대한 신뢰문제까지 제기되면서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를 맞고 있다.

남북한의 재래식 대결 시대가 북한에 의한 核독점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한 시점은 2003년 4월 북경에서 열린 미·중·북 3자회담에서 이근 북한 대표가 켈리(James Kelly) 미국 대표에게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통보한 때이다. 이후 북한은 2005년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실험을 단행함으로써, 핵보유 사실을 물리적으로 입증했다. 역대 정부가 북한에 의한 核독점 시대가 열린 것을 몰랐거나 애써 무시하면서 대화를 통한 북핵해결, 즉 비핵화 외교에 몰두하는 동안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 없이 계속했으며 급기야 미국 안보의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핵문제가 이렇게 악화된 것은 1991년 이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 역대 한미 정부가 추진했던 비핵화 외교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했던 전술핵을 철수하고 한국이 핵무장을 포기하는 ‘남한 비핵화’를 먼저 실현한 다음, 대화와 설득, 제제와 압박을 동원해서 외교적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겠다는 것이 비핵화 외교의 요체이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된 전술핵을 철수하고 한국이 핵무장을 포기하는 모범을 보이면 북한도 핵개발의 명분을 잃고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에 근거한 것이었다. 특히 한국의 역대 정부는 지난 30여 년간 전술핵의 재배치나 자체 핵무장 등 우리의 핵옵션을 행사해서 북한의 핵개발에 맞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아래와 같은 명분과 논리를 들어 거부하면서 비핵화 외교에 집착했다(<표 5> 참조).

<표 5>: 실패한 비핵화 외교의 명분과 논리

표 5_실패한 비핵화 외교의 명분과 논리

2017년 7월 북한이 단행한 두 차례의 ICBM 실험과 9월의 수소탄 실험은 한반도 비핵화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우리가 비핵화의 모범을 보이면 북한도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비핵화 외교는 核에 대한 북한 정권의 집착과 전략을 과소평가한 자만과 안일함의 산물이다.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가 북한에 핵개발 명분을 주고 비핵화 원칙을 훼손한다는 명분론, 원칙론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국가존망을 위협하는 실체로 다가선 안보현실에 대한 무지와 외면의 산물이다. 또한 외교도 힘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무시한 공허한 ‘대화 지상주의’, ‘대화 만능주의’에 불과하다. 동북아의 핵 도미노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이유로 우리의 자체 핵옵션을 포기하는 것도 주권국가로서의 존엄과 위신, 국격과 자존을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제사회는 30년간 NPT를 철저히 지킨 결과 북한의 핵위협에 놓인 한국이 억지력 제고와 남북한 핵군축 협상을 위해 핵옵션을 행사하겠다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

2. ‘균형’으로 안보패러다임을 전환

核에는 核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核시대의 냉엄한 교훈이다. 지구상에 核시대가 열린 이래 군사적으로 대치한 경쟁국들은 모두 상대방의 핵개발에 자체 핵개발로 응수했다. 미국의 핵에 대응해서 소련이, 미국과 소련에 대응해서 중국이 핵을 개발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소련의 핵위협에 대응해서 핵을 개발했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상호 경쟁하면서 핵을 개발했고, 이스라엘은 핵보유 여부에 대해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중동 주변국들의 핵개발 시도를 무력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란(제재외교), 이라크와 시리아(핵시설 파괴), 리비아(당근외교) 등 핵개발 도중에 있던 국가들의 경우 외교나 외과수술식 정밀공격으로 핵개발을 차단했다. 그러나 남아공(내부요인)과 우크라이나(외부요인)와 같이 핵을 완성한 나라들은 내부 혹은 외부 요인에 의해 근본적인 체제변화를 이룬 후에 스스로 핵을 포기했다. 이는 핵을 보유한 북한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핵포기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가 북한의 핵포기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이다. 첫째, 북한의 비핵화 국가전략을 그대로 수용하고 비핵화의 전제조건과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는 것이다. 결과는 사실상의 굴복이고 한미동맹 와해가 될 것이다. 둘째, 전면전을 각오하고 군사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결과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와 같은 폐허의 한반도일 것이다. 셋째, 북핵폐기를 장기적인 목표로 두고 핵억지 강화와 핵군축 협상을 병행하면서 북한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대북전략을 추진하는 것이다. 나라의 안보와 번영의 관점에서 현실적이고 타당한 길은 세 번째이며 이를 위한 선결조건은 우리가 자체 핵옵션을 행사해서 한반도에서 ‘핵 對 핵’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적대국의 核에 核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핵무기의 파괴력이 재래식 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재래식 전력을 모두 쏟아 부어도 상대방의 수소탄 한 발을 당할 수 없다. 핵무기는 비핵국가로서는 완벽한 방어가 불가능한 가진 자의 절대무기인 것이다. 2017년 9월 3일 실시한 북한의 6차 핵실험은 수소탄 실험이었다. 핵분열 원리에 기초한 원자탄이 최대 수십 킬로톤(kt)의 파괴력을 갖는 반면 핵융합 원리에 따른 수소탄은 최소 수백kt의 위력을 보유한다. 서울 광화문 상공에 각각 150kt과 250kt의 수소탄을 투하하는 상황을 상정하고, 미국의 Alex Wellerstein이 개발한 핵공격 피해예측 모델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 150kt 투하시 사망 488,640명; 부상 2,165,880명

– 250kt 투하시 사망 717,710명; 부상 2,851,620명

이제 북한을 설득하고 압박해서 핵폐기를 실현하겠다는 비핵화 외교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를 실체로 받아들이고 우리도 핵으로 맞대응 하면서 북한의 핵사용과 위협을 억지하고 방어하는 구도로 안보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북핵폐기를 단념하는 것이 아니라 국력의 초점을 단기간의 협상을 통해 핵폐기를 이루려는 비핵화 외교가 아니라 당면한 북핵위협에 대한 대응, 즉 억지와 방어에 둔다는 뜻이다. 비핵화 외교로는 核을 독점한 북한이 우리에게 야기할 군사적 위협(전략적 취약성)과 이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될 · 심리적 압박(공포의 불균형)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은 자체 핵옵션을 행사해서 ‘핵 對 핵’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북한의 일방적인 핵보유로 조성된 전략적 취약성과 공포의 불균형을 극복해야 한다. 核균형 시대에는 전략적 취약성이 전략적 안정성으로, 공포의 불균형이 힘의 균형으로 전환됨으로써 과거 냉전시대의 미·소, 미·중 관계와 같이 안정적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하면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추진하되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면 국가생존을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자체 핵무장의 길로 나서야 한다.

3.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대북 억지와 상호 핵군축 병행추진

미국은 전술핵을 철수한 이후에도 핵우산(확장핵억지) 제공 약속을 계속했다. 본토에 배치된 ICBM, 장거리폭격기 및 핵잠수함에 탑재한 SLBM으로 핵우산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기 전까지 미국의 핵우산공약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한미의 재래식 전력이 우세한 상황에서 북한의 크고 작은 도발에 재래식 전력으로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8년 이후 한미 안보협의회에서 핵우산공약을 재확인하는 것이 연례적인 행사가 되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빠진 수사적인 의례에 불과했다. 북한의 핵개발이 동맹 차원의 구체적인 대응이 필요한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역대 한미 정부가 비핵화 외교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국의 핵우산공약이 단순한 말의 성찬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핵우산 공약이 구체적인 행동과 계획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양국에 실체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탄두와 운반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데 이론이 없다. 과거에는 북한의 핵위협이 수사적 차원의 협박으로 치부되었지만 이제는 북핵을 실존하는 군사위협으로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북한이 美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국이 상당한 위협을 느끼게 된 만큼, 자연스럽게 미국의 핵우산공약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워싱턴을 희생할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자, 미국이 자국 안보를 위해 한반도에서 발을 뺄 수도 있다는 한반도와 美본토 ‘분리’에 대한 우려이다. 이는 한미동맹 자체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안보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1957년 10월 소련이 Sputnik 1호 위성발사에 성공하여 美본토 공격능력을 확보하자 서유럽의 동맹국들도 미국의 핵우산공약에 의구심을 표시하며 분리 가능성을 우려했다. 미국이 함부르크를 보호하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느냐는 우려였다. 미국은 핵우산공약을 보다 확실히 해달라는 서유럽 동맹국들의 의견을 수용해서 이 지역에 배치된 전술핵무기에 대한 서유럽의 접근권한과 공동책임을 강화하는 핵공유협력을 시작했다.

전술핵이 재배치되면 한반도의 안보구도는 기존의 ‘재래식 對 재래식’의 재래식 균형과 더불어 ‘핵 對 핵’의 核균형이 병존하는 ‘쌍균형 안보구도’로 전환될 것이다. 다만 핵의 압도적인 파괴력을 고려할 때, 쌍균형 안보구도는 사실상 核균형에 의해 지배될 것이며 한반도에서 사실상 核균형 시대가 열리게 된다. 즉 북한의 核독점 시대가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한미동맹에 의한 核균형 시대로 전환되는 역사적 국면이 열리는 것이다. 核균형 시대에 남북한은 ‘핵 없는 한반도’를 장기적인 목표로 두되 긴장완화와 남북관계의 안정적인 관리를 당면 목표로 설정하고, 냉전시대의 미·소 관계처럼 대화와 협상, 교류협력과 인도지원 등 다양한 접촉을 모색할 것이다. 다만 북한의 핵보유가 지속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화와 교류협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를 계기로 한국군은 북한의 핵공격을 억지하고 억지 실패시에 핵공격에 대응하고 핵보복을 실행할 수 있는 군대로 거듭나야 한다. 적어도 한국군 일부의 전략과 교리, 전력구조, 교육 및 훈련은 북핵에 대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한미간 핵공유협력이 강화된다면 미국의 협조 하에 한국군의 핵대응 능력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우리 사회도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한 최소한의 방호체계를 갖추고 대국민 교육과 훈련을 통해 북핵에 대한 대처능력을 높여야 한다. 모든 국민이 북한의 핵위협을 국가존망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하며, 유사시 대비수칙을 숙지해서 피해 가능성을 미리 줄여야 한다. 전국적으로 적정수준의 대비체계와 능력을 갖추도록 국가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전술핵 재배치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2보 전진을 위해 잠정적으로 1보 후퇴하는 전략적 포석이다. 당장 시급한 대북 핵억지력을 구축하여 북한의 핵위협을 막아내면서 동시에 남북한 쌍방 핵군축을 위한 협상자산을 축적하는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이다. 이를 위해, 한미 당국은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협의를 개시함과 동시에 북한에 대해 한반도 핵군축 협상을 제의해야 한다. 북한이 호응하여 핵을 포기하기로 하면 전술핵 재배치 절차는 중단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核독점이 야기하는 심각성을 감안할 때,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걱정해서 전술핵 재배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초반에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해서 중국의 개입을 허용했던 사드 사태를 교훈삼아 처음부터 전술핵 재배치의 목적이 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對北 억지와 한반도 핵군축을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1991년 부시 대통령의 전술핵 철수 선언은 당시 미·소 양국의 합의나 조약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이었고, 고르바쵸프 대통령이 미국에 호응해서 유사한 조치를 순차적으로 단행했다. 따라서 전술핵 재배치가 미·러의 합의 위반은 아니다. 러시아가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우리는 극동에 배치된 러시아의 전술핵 자산을 문제 삼을 필요가 있다. 중국이 전술핵을 보유하지 않고 있고 일본도 비핵국인 점을 감안하여, 남북한 핵군축을 ‘동북아전술핵제한지대’로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전술핵을 폐기하는 ‘전술핵폐기조약’으로 확대하는 비전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Ⅳ. 결론

현재 한국은 북한에 의한 ‘核독점’이라는 사상 초유의 안보위기에 직면해있다. 1945년 지구상에 核시대가 열린 이래 군사적으로 대치한 당사국 간에 어느 한쪽의 핵보유를 일방적으로 허용한 사례는 한반도가 唯一無二하다. 국가안보의 둑이 터진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어떤 형태로 든 核으로 맞대응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국민은 북한 핵의 인질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사실이 공론화되어 정부가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이 1991년이다. 지난 30년간 6명의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해보겠다고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고, 우리는 7번째 대통령의 행보를 지켜보는 중이다.

국민을 북핵의 볼모가 되도록 만든 오늘의 현실은 역대 정부의 정책 실패가 자초한 뼈아픈 대가이다. 훗날 역사는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이 추진했던 비핵화 외교를 ‘서희 담판’과 대비하여 건국 이후 최대의 정책실패이자 되풀이해선 안될 유산으로 기록할 것이다. 후손에게까지 짐으로 남겨진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안보가 바로서야 하며, 그 첫 발은 비핵화 외교 실패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겸허한 반성이다. 나라를 참담한 안보상황으로 몰아넣은 사태에 대해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책임을 통감한다며 나선 사례가 없다. 역대 정부는 의욕을 앞세우며 전임 정부와 차별화하면서도 실패한 비핵화 외교를 답습함으로써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다. 북한 세습정권의 핵보유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안이하게 대처하면서 오래된 레코드판을 돌리 듯 비핵화 외교에만 매몰된 결과가 북한의 핵독점 허용이다.

우리 국민들은 ‘북핵위협이 별 것 아니다,’ ‘협상을 통해서 잘 해결되었다,’ ‘북핵이 레드라인을 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과거와 다르다’는 등 북핵위협을 애써 평가절하하고 비핵화 외교에 기대를 거는 말들에 익숙하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북핵 불용’이니 ‘북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 수 없다’느니 하면서도 하는 정책은 이전 정부에서 실패한 비핵화 외교 그대로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사회가 북한 핵위협에 둔감하다는 외국의 지적에 대해 국민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의 핵보유로 형성된 불리한 안보구도를 타파하고 더 이상 북한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의 수를 쫒아가며 대응하던 지금까지의 수세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우리의 카드를 만들고 유리하게 판을 짜서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잡는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대북 억지력과 협상력의 동시 확보야말로 북한을 끌려오게 만들고 우리가 국면을 주도하는 새 판을 짤 수 있는 비결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이상 정부의 일차적 책무는 강한 억지력을 구축해서 우리 땅에서 핵이 사용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 북한 핵이 터졌을 경우를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도 억지력 강화만큼 중요하다. 현재 정부와 군의 조직과 대비태세, 국민교육, 재난대응시스템에서 북한 핵에 공격받는 상황은 거의 배제되어 있는 만큼, 기존의 대응시스템을 북핵 대응체제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 본 글은 11월 23일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주최『2018년 국방정책세미나』 에서 발표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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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전성훈

객원연구위원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