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한국의 선택 여부와 상관없이 이제 ‘인도-태평양(Indo-Pacific)’이라는 개념은 한국을 포함한 지역의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는 듯하다. 지역 국제 관계나 지역을 둘러싼 전략적 상황을 묘사하고 설명하는데 이제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 개념은 필수불가결하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 전략을 아시아 지역에 대한 전략으로 채택한 미국이나 미국과 함께 4자안보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QUAD)를 구성하는 인도, 일본, 호주는 이미 인태 전략 혹은 지역을 공식화 한지 길게는 10년 이상, 짧게는 4~5년이 지났다. 동남아 10개국의 모임인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도 2019년 ‘아세안의 인도-태평양 관점(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 AOIP)’을 선언했다. 한국과 전략적으로 중요한 관계를 가진 대부분 지역 국가들이 ‘인태 전략’ 혹은 ‘인태 지역’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수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인태 지역 혹은 전략을 공식화한 적이 없다.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태 전략을 발표한 적도 없고, 인태 지역에 대한 별도의 입장을 발표한 적도 없다. 물론 미국의 인태 전략에 공식적으로 동조한 적도 없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 장면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언급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보적 반응이다.1 이런 입장 때문에 한국은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에서 한발 비껴서 있다는 인상을 준다. 더 나아가 인태 전략과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로 대표되는 미중 전략 경쟁에서도 특정한 편을 들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가면 한국은 생각보다 폭넓게 다른 국가들의 인태 전략과 협력하고 있다. 2019년 이후로 한국은 미국뿐 아니라 호주의 인태 전략과 협력 체계를 만들어왔다. 2019년 한국과 미국은 한국의 신남방정책(New Southern Policy, NSP)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간의 협력에 합의했다. 2020년에 재확인된 이 합의는 2021년 5월, 양국 외교 실무자간 대화, 그리고 이어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한국은 호주와도 2021년 초부터 구체적인 협력을 모색하고 있으며,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SEAN Outlook on Indo-Pacific, AOIP)에 대한 지지 의사도 수 차례 밝혔다.2

그러나, 한국의 지역 정책 혹은 대외정책은 전반적으로 다른 국가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전면적인 협력의 형태가 아닌 한국의 대아세안 정책과 미국, 호주의 인태 전략이 만나는 접점에 국한된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대상 지역 역시 인태 지역 전반을 상정하지 않고 아세안 지역에 한해 논의가 되고 있다. 협력 분야에서도 가급적 전통 안보 혹은 군사적 함의나 전략적 함의를 가진 분야는 배제하고 비전통 안보, 인간 안보, 경제 등 보다 연성적이고 정치적으로 덜 민감한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협력이 가진 의미는 작지 않다.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 호주의 인태 전략 사이의 협력은 매우 구체적인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한국의 대외정책이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이름을 띠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인도-태평양 지역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대외정책으로 확대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 그리고 호주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언제, 어떻게 연계되기 시작했으며, 어떤 분야에서 협력을 해왔는지 먼저 살펴본다. 그리고 이런 우회적 협력의 문제 및 도전에 대해서 검토한다. 이를 통해서 향후 한국의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전략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정책적 함의를 도출한다.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의 만남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인도-태평양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에 와서다.3/sup> 트럼프 행정부 초기인 2017년 3월 이미 백악관 내에서 인태 전략에 관한 논의가 등장한 것이 문서로 입증된다4/sup> 이 문서에서는 미국이 국가 안보 도전에 맞서 인태 지역에서 어떻게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고, 자유주의 질서를 강화하며, 중국의 비자유주의 질서를 억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2017년 말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회의(CEO Summit) 연설에서 인도-태평양을 ‘다양한 문화와 꿈을 가진 모든 주권 국가가 나란히 자유와 평화 속에서 번영하는 지역’이라고 언급했다.5

인도-태평양을 공식 정책으로 언급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지만 그 이전부터 이 개념은 미국 고위급에 의해 언급이 되어왔다. 대표적으로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은 2010년대 초 이미 구체적으로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2010년 하와이에서 한 연설에서는 ‘인도-태평양 유역(Indo-Pacific basin)’을, 그리고 2011년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에 기고한 글에서는 미국과 호주 관계를 언급하며 호주와의 동맹을 태평양 동맹에서 인도-태평양 동맹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6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 실패를 비판하며 나온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인도-태평양은 유지된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동맹의 약화, 미국 리더십의 약화 등을 비판하면서 ‘미국의 귀환(America is back)’을 외친 바이든 행정부였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전략은 유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QUAD 등은 미국의 대아시아 관여 및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위해 여전히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새로운 요소도 추가되었다. 2021년 미국이 영국, 호주와 체결한 ‘오커스(AUKUS)’는 전략적이고 군사적인 부문에서, 2022년 초 발표될 것으로 예고된 ‘인도-태평양 경제틀(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은 경제 부문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다.7

호주의 인태 전략은 미국의 인태 전략이 공식화되기 이전부터 본격화되었다. 호주에서는 2010년대 초부터 학자들을 중심으로 인태 전략이 활발하게 논의되었다.8 호주 입장에서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 단위는 호주를 지역 국제관계의 중심에 놓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변화다. 또한 인도 등과 경제적 연계를 강화할 수 있는 지경학적 의미도 갖는다. 민간에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호주 정부는 2013년 호주 국방백서로 시작해 2017년 호주 외교백서에 이르기까지 점차 인도-태평양 개념을 호주의 대외, 국방정책의 핵심으로 만들어 갔다.9 다만 호주의 경우 인도-태평양을 미국과 같은 전략적 관점이라기보다 하나의 지역 단위라는 관점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호주의 인도-태평양 개념을 본격적으로 알린 2017년 호주 외교백서에서는 인도-태평양에 전략(strategy)이란 표현을 전혀 쓰지 않는다. 인도-태평양은 지역(region)이라는 명사와 함께 쓰이거나 ‘인도-태평양’ 독자적으로 쓰인다.10

한국이 인도-태평양이란 개념을 심각하게 보기 시작한 것은 미국, 호주 등이 이미 인도-태평양 개념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던 것 보다 훨씬 뒤쳐진다. 한국에서 인태 지역 혹은 인태 전략 등장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11 정부 차원에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서 미국의 인태 전략에 동참할 것을 주문한 이후다. 당시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언론 보도자료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신뢰와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공동의 가치 위에 세워진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안정, 번영의 린치핀(Linchpin)’이라고 말하며 한미동맹을 인도-태평양 차원으로 확대하고 있다.12 이는 한국의 인태 전략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인도-태평양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미국의 제안에 한국 정부는 입장을 정리하는데 혼란을 겪었다.13

2017년의 혼란 이후 한국 정부는 점차 방향 설정을 구체화했고 2019년 11월에는 한국과 미국 사이 인태 전략에 관한 협력을 공식화했다. 2019년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의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와 데이비드 스틸웰(David Stilwell)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만나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태 전략이 협력한다는 내용의 ‘공동설명서(joint factsheet)’를 발표했다.14 양국 간 합의는 2020년 말 다시 확인되었다. 2020년 11월 고윤주 외교부 북미국장과 마크 내퍼(Marc Knapper)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제2차 공동설명서를 내면서 2019년 합의 이후 이루어진 협력의 내용을 확인하고 추가적인 협력을 제시했다.15

한미 간 협력은 2021년에 더 구체화되었다. 특히 2021년에는 실제 신남방정책을 담당하는 외교부 아세안국과 미국 측이 구체 사항에 대해 논의했다는 점이 2019년, 2020년의 합의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2021년 5월 박재경 외교부 아세안국장과 아툴 케샵(Atul Keshap)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차관보는 협의를 통해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태 전략 간 협력을 아세안 지역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펼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16 이 논의는 같은 달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의에서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태 전략 사이 협력에 관한 내용의 기초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2021년 2월에는 박재경 아세안국장과 리드완 자드와트(Ridwaan Jadwat) 호주 외교통상부 동남아국장이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호주의 인태 전략 사이 아세안 방면에 대한 협력의 구체 사항을 논의했다.17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의 협력

 
2019년 한미의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협력에 관한 합의 이후 아세안 지역에 대한 한미 협력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아세안 및 인도에 대한 양자 협력의 형태로 출발했다. 출발하는 시점에서는 미국이나 호주 혹은 다른 지역 국가와 공동의 노력을 통한 아세안과의 협력 혹은 아세안에 대한 지원은 추진 방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인태 전략 접근, 2019년 한미간 합의 및 이후 한미 공조가 이루어지면서 점차 미국, 호주와 아세안 방면에서의 협력은 신남방정책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이후 ‘신남방정책 2.0’이 논의되던 시점부터 향후 신남방정책에서 한국과 미국의 협력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더 나아가 미중 전략 경쟁에서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전략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두 가지 요소를 고민해야 했다. 첫째는 일단 한국과 미국이 아세안 방면 협력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이어갈 것인가라는 고민이다. 둘째는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태 전략 사이 협력이 자칫 잘못하면 한국이 미국의 인태 전략에 동참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사이 협력은 미중 전략 경쟁에서 한국이 취하는 기본 태도와 다른 방향이라는 인식을 줄 가능성이 있었다. 또한 미중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를 취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이 보기에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의 협력은 한국이 미국 쪽으로 경도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었다. 이런 고민에 따른 타협점으로 한국은 2019년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협력에 관한 합의 전면에 신남방정책의 세 가지 원칙인 3P, 즉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그리고 평화(peace)를 내세웠다. 뿐만 아니라 가급적이면 안보, 군사, 전략적 함의를 가지는 협력 분야를 제외하고 비전통 안보, 인간 안보, 경제 및 사회, 문화적 분야로 협력 내용을 제한하려 했다.

이에 따라 2019년과 2020년 한미 합의를 담은 공동설명서는 3P 원칙 아래 협력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사람’ 부문에서는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와 인적 교류,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를, ‘번영’ 분야에서는 에너지, 인프라, 개발금융, 디지털 경제 관련 협력을, 그리고 ‘평화’ 부문에서는 수자원 관리, 해양 안보, 기후변화 대응, 보건 역량 개발 등을 명시하고 있다. 한미 협력을 신남방정책의 3P 원칙 아래 배치한 것뿐만 아니라 한국은 인태 전략과 협력에서 전략적 부담을 덜기 위해 평화협력 부문의 대부분을 전통 안보나 전략적 함의를 가진 내용보다는 비전통, 인간 안보에 대한 내용으로 채웠다.

한편 2021년 한미 협력과 한호 협력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2019년, 2020년 한미 협력과 약간은 다른 모습을 띤다. 2021년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협력 내용이 달라진 배경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먼저 한국 정부는 2020년 말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정책을 신남방정책 플러스라는 형태로 한 단계 고도화했다. 과거 신남방정책의 3P라는 원칙은 그대로 있지만 협력 분야로 7대 중점 분야가 마련되었고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사이 협력도 이 분야들을 감안해 재편되었다.

또한 코로나19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모두 2020년 한 해 국내적 대응에 급했다면 2021년에 들어서는 국내적 대응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코로나19에 대응해야만 했다. 특히 두 국가 모두 협력 대상으로 아세안 개도국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백신 외교 등의 코로나19 관련 대외정책이 중요해졌다. 셋째로 2019년 이후 미중 전략 경쟁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특히 미국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2021년 한미 그리고 한호 협력에 관한 논의에서 한국은 외교부 북미국이 아닌 실제 신남방정책을 담당하는 아세안국이 주요 주체가 되었다. 그런 만큼 협의와 합의 내용도 더 구체적으로 아세안에 초점을 두고 있다.

2021년 한미, 한호 사이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협력 합의 내용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먼저 2021년 2월에 있었던 한호 협력에 관한 당국 대화는 크게 네 개 부문 즉, 1) 백신과 보건, 2) 메콩(Mekong) 지역 수자원 관리, 3) 아세안의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 지원, 4) 역내 해양 안보 증진에서 양국간 협력을 규정했다.18 반면 한미가 2021년 5월에 논의했던 내용은 좀 더 세분화된 7개 분야 즉, 1) 백신 보건 협력, 2) 아세안 연계성 증진을 위한 협력, 3) 기후변화와 녹색성장 대응, 4) 아세안 디지털 전환 협력, 5) 메콩 지역 수자원 관리, 6) 역내 해양역량 강화 협력, 7) 청년 인적 교류 등이다.19 이 중에서 백신 및 보건, 메콩 지역 수자원 관리, 역내 해양 안보 증진 등의 분야에서의 한미와 한호 협력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한미의 디지털 협력, 기후변화와 녹색 성장 관련 협력은 한호 협력에서는 아세안의 경제회복 지원 방안에 간략히 포함되어 있고, 청년 교류 분야는 한미 협력에만 포함되어 있다. 또한 한미는 2021년 2월 미얀마 군사 쿠데타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등 지역 전략 환경에 관한 논의를 추가로 진행했다.

신남방정책과 미국 및 호주의 인태 전략 사이 협력을 넘어서 한국 대외정책에서 인태 전략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함의도 2020년부터 2021년을 거치면서 크게 증가했다.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인도-태평양에 대한 언급이 크게 증가했다. 2017년 11월 한미 정상회담에 단 한 차례 등장했던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은 2021년 5월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모두 다섯 차례 등장했다. 특히 양 정상은 “한미 관계의 중요성은 한반도를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서, 우리의 공동 가치에 기초하고 있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우리 각자의 접근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는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구상을 연계하기 위해 협력하고, 양국이 안전하고 번영하며 역동적인 지역을 조성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라고 하면서 인태 지역에서 한미 동맹의 역할을 강조하고,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사이 협력에 큰 무게를 두었다.20

2021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호주 순방에서 한국과 호주는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로 격상했다.21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공동 선언에는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이 한미 정상회담 성명보다 많은 8회 등장한다. 여기에 나타난 표현들을 보면 한-호주 협력관계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이라는 공동의 비전에도 기여’, 한국과 호주의 안보는 ‘인도-태평양의 안정, 개방성, 번영, 그리고 규모와 국력에 관계없이 국가들의 권리와 주권을 보호하는 규범 기반 국제 질서와 연계’, 한국과 호주는 양국 협력을 ‘인도-태평양의 안정, 개방성, 번영, 그리고 규모와 국력에 관계없이 국가들의 권리와 주권을 보호하는 규범 기반 국제 질서와 연계’, 그리고 ‘호주와 대한민국은 인도-태평양의 안정이 남중국해를 포함한 해양 영역에서의 국제법 준수에 달려있다는 점을 인식’과 같은 보다 구체적이고 한발 더 나간 표현들이 나타난다.22

한국의 대외정책, 특히 미국, 호주와의 관계에서 인도-태평양은 이제 매우 구체적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2021년 한미, 한호 정상회담에서는 공급망 안정과 관련해 미국, 호주와 매우 구체적인 협력의 모습도 나타났다. 미국과는 주로 반도체 부문에서 공급망 안정성 강화와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한 예로 2021년 12월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상무부와 ‘한미 반도체 파트너십 대화’를 개최했다.23 호주와도 12월 정상회의에서 한국의 강한 제조업 분야와 호주의 자원이 결합되는 상호 보완적인 형태의 공급망 강화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직후부터 한국은 감염병 대응에 대한 지역적 공동 노력을 모색하기 위한 협력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대외적으로는 쿼드 플러스(QUAD Plu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24 뿐만 아니라 한국은 2021년 7월 처음으로 17,000명 규모의 병력이 참여하는 탤리즈먼 세이버(Talisman Sabre) 훈련에 충무공 이순신함을 포함한 병력을 파견했다.25 이 훈련은 호주,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영국과 미국이 함께 하는 합동훈련이다.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사이 협력 과제

 
2019년 처음으로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태 전략 사이 협력에 관한 합의가 도출된 이후 협력을 위한 많은 논의와 합의, 그리고 실제 행동이 이어졌다. 미국, 호주의 인태 전략과의 협력은 이제 신남방정책에서 핵심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몇 가지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지난 3년간 협력에도 불구하고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이 만들어 낸 구체적이고 눈에 보일만한 결과물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사이 협력이 만들어 낸 명확한 성과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협력을 위한 논의와 합의 과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논의와 합의가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 내기 전에는 성공적 협력의 여부를 평가받기 어렵다.

보다 구조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신남방정책은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한국의 정책이다. 반면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태 전략 협력은 아세안을 대상으로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한미 사이의 협력이다. 어디에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서 이 협력을 보는 시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신남방정책에 주안점을 둔다면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의 협력은 무엇보다 신남방정책의 원래 목적 즉,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협력 증진, 한반도와 주변 4강을 벗어난 한국 외교의 다변화라는 목적을 위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반면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태 전략 협력을 한미 동맹의 강화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한미 동맹의 강화, 더 나아가 중국 견제를 위한 한국의 지역적 역할 강화라는 목적이 주가 된다면 신남방정책 본래의 목적인 아세안과의 협력은 다소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디에 방점을 두는가에 따라서 다른 한가지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아직 이 문제에 명확한 방향성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 늦기 전에 인태 전략과 신남방정책 사이 협력이 신남방정책의 본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미 동맹 강화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인지 방향성을 정해야 한다. 혹은 이 두 가지 사이 교집합을 찾아 내는 것도 방법이다. 반드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수단이 되는 방향이 아니라 결국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의 협력이 한국의 신남방정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미동맹 강화라는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는 담론과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대안이 된다.

또 다른 구조적인 과제는 신남방정책의 가지고 있는 지역적 범위와 인태 전략이 상정하는 지역적 범위의 상이함이다. 신남방정책은 아세안과 인도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의 양자 협력 정책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넓게는 인도양으로부터 미국 동부 태평양까지를 포괄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미국을 포함한 북미, 아시아, 오세아니아, 그리고 서남아를 포괄하며 태평양과 인도양이라는 두 개의 큰 바다를 포함한다. 이렇게 지역적 범위가 좁은 신남방정책과 매우 넓은 지역을 포괄하는 인태 전략 사이 협력은 동등한 협력이 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협력은 아세안이라는 인태 지역에서 일부분만을 대상으로 일어난다. 미국의 인태 전략과 한국의 전략이 동등한 수준에서 보다 포괄적으로 협력하기 위해서 한국도 미국의 인태 전략에 상응하는 지역적 비전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차제에 한국도 더 넓은 지역적 비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세계 6위권의 군사력,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국가다.26 코로나-19에 대한 비교적 성공적인 방역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았고, 한국의 문화적 힘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런 한국의 장점을 바탕으로 2021년에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초대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제 한국을 선진국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유엔무역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UNCTAD)에서는 한국을 이제 선진국으로 분류한다.27 한국의 성장하는 외형과 힘에 대해서 국내적으로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자부심 이면에는 한국이 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 다는 점 역시 기억해야 한다. 지역적으로 그리고 글로벌 차원에서 개발 문제, 기후변화 문제, 지역의 안보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역할이 요구된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대외정책이나 전략 역시 좁은 한반도나 동북아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한반도 문제는 한국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며, 이 생존에 관한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동북아, 주변 4강 관계는 중요하고 이 주제들이 한국 대외정책의 핵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를 넘어선 더 넓은 시각과 전략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교적 좁은 지역적 시각을 가진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인태 지역이라는 더 넓은 틀과는 다소 맞지 않는다. 한국이 한국의 외형에 걸맞은 대외정책을 하기 위해서는 인도-태평양 전체를 포괄하는 한국만의 전략과 비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신남방정책에서 얻은 성과를 뒤로하고 인태 지역을 염두에 둔 정책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신남방정책의 성과, 아세안과의 강한 협력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한국만의 지역 정책, 한국만의 인태 전략과 비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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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대외협력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아세안-대양주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