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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으로 중동의 장기 독재자들이 축출됐다. 튀니지의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를 시작으로 이집트의 무바라크(Hosni Mubarak), 리비아의 카다피(Muammar Gaddafi), 예멘의 살레(Ali Abdullah Saleh)가 물러났다. 그런데 시리아 세습독재 정권의 아사드(Bashar Assad)는 유일하게 생존했다. 아사드 정권이 반독재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 하면서 2011년 3월 시리아 내전이 시작됐다. 내전 직후 아사드 정권은 수도 다마스커스를 제외한 영토 대부분의 통제권을 잃어 붕괴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영토 70% 이상을 장악해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국제인권감시기구에 따르면 아사드 정권은 내전 기간 동안 민간인을 상대로 85차례 이상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사린가스 살포로 2013년 8월 굽타에서 734명이, 2017년 4월 이들립에서 73명이 사망했다(Human Rights Watch 2019, 554-9).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 횟수를 200 차례 이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사드 정권이 자행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유엔 시리아 인권조사위원회 구성, 유럽연합 이사회 명령, 미국 대통령 행정명령의 조치가 내전 기간 중 이어졌다.

8년여 내전에서 자국민을 잔인하게 학살한 아사드 정권이 전쟁의 승자로서 국제사회 복귀를 준비 중이다. 2017년과 2018년 시리아 정부는 전후 재건 사업을 위한 다마스커스 엑스포를 개최했다.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을 적극 도운 이란과 러시아 기업들이 대거 참여했고 중국 기업도 복구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올해 3월 내전 발발 후 처음으로 시리아 의회의장이 요르단에서 열린 아랍의회연맹 회의에 참석했다. 2011년 11월 아랍연맹은 아사드 정권의 평화 시위대 유혈 진압과 자국민 학살을 이유로 시리아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요르단 회의에서 시리아 대표의 참석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대체로 시리아의 복귀가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내전 시기 중단됐던 이웃 국가와의 교류도 시작됐다. 2018년 12월 아랍연맹 회원국인 수단의 대통령이 다마스커스를 공식 방문했고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이 시리아 주재 대사관을 다시 열었다. 올해 3월엔 요르단이 민간 항공사의 시리아 영공 통과를 허용하면서 양국 간 교류가 8년 만에 재개됐다.

중동 전역을 휩쓴 민주화 혁명, 장기 독재정권 몰락의 도미노 현상, 8년여 내전, ISIS의 발호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세습독재 정권은 살아남았다. 1970년 아버지 하페즈 아사드(Hafez Assad)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해 추진한 다수파 끌어안기 전략이 주효했다. 아사드 가문은 시아파 소수 분파인 알라위파에 속했고 하페즈 아사드는 수니파 군·경제 엘리트를 포용하는 다종파 정권 엘리트 연합을 구축했다. 2000년 아들 바샤르 아사드의 세습 이후 지금까지 아사드 가문 측근의 알라위파·수니파 엘리트 연합은 강한 결집력을 보여주고 있다. 바샤르 아사드 시기에도 수니파 엘리트 포용 정책은 적극 추진됐고 엘리트 연합의 아들 세대까지 충성과 보상의 교환이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결국 아사드 정권의 다종파 엘리트 연합은 내전 기간 중 별다른 이탈자 없이 내구성을 다졌고 정권 수호에 성공했다.

 

Ⅰ. 시리아 독재자와 다종파 정권 엘리트의 안정적 부자세습

아사드 가문은 시리아 전체 인구의 11%를 차지하는 알라위파에 속한다. 인구의 87%가 무슬림이고 이는 수니파 74%,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 11%, 이스마일파 1%, 열두이맘파 1%로 각각 이루어져 있다. 기독교도는 10%, 드루즈교도는 3%에 해당한다(CIA 2018).

오스만 제국 시기 시리아 지역의 수니파는 도시 경제 엘리트 계층을 차지했고 알라위파는 대부분 소작농이었다. 1920년 오스만 제국이 해체 단계에 들어가고 시리아에 대한 프랑스 위임 통치가 시작되면서 알라위파 하층민 다수가 프랑스식 근대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46년 시리아가 독립하고 1년이 지나 범아랍주의와 반제국주의를 내세운 아랍 사회주의 바트당(Arab Socialist Ba’ath Party)이 결성됐다. 여기에 알라위파 사관학교 출신이 대거 가입했다.

1963년 바트당의 최고 권력기구인 군사사령부 소속 알라위파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사회주의, 아랍 민족주의, 전통 보수주의 정당 간 선거를 통한 제도권 내 경쟁은 사라졌고 바트당 일당 독재가 시작됐다. 3년 후 또다시 알라위파 군부 엘리트 일부가 쿠데타를 주도해 자디드(Salah Jadid) 육군 참모총장이 바트당 부서기 자리에, 2번의 쿠데타에 적극 가담한 하페즈 아사드가 국방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1967년 시리아가 3차 중동전쟁에 참전해 대패한 후 자디드 부서기와 하페즈 아사드 장관 사이의 갈등이 깊어졌다. 하페즈 아사드는 급진 사회주의자 자디드와 달리 수니파 경제 엘리트 그룹에게 유리한 친시장 정책을 주장해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1969년 자디드는 하페즈 아사드를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듬해 하페즈 아사드가 쿠데타를 일으켜 자디드를 체포한 후 당을 장악했고 몇 달 뒤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바트당 일당 독재는 아사드 1인 독재 체제로 전환됐다. 하페즈 아사드 대통령은 군 정보국, 내무부 정보국, 지휘통신사령부, 샤비하(Shabiha) 민병대의 핵심 지도부를 아사드 가문과 알라위파 출신의 최측근으로 꾸렸다. 두바(Ali Douba)는 알라위파로 하페즈 아사드의 30년 재임 기간 내내 군 정보국장을 지내면서 군부 내 엘리트를 세분해 감시하고 충성 경쟁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다른 알라위파 술레이만(Bahjat Suleiman)은 1970년 쿠데타에 적극 참여해 하페즈 아사드를 옹립했으며 군 정보국 내 비밀 업무를 관장했다. 이후 부자세습을 위한 권력 이양기에 내무부 정보국장(1999-2005)을 맡았다.

하페즈 아사드의 동생 리파트(Rifaat Assad)는 1980년 아사드 가문 일가를 경호하고 반대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샤비하 민병대를 조직했다. 리파트 아사드는 1982년 중부 도시 하마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민간인 4만 여명을 학살한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 형을 몰아내기 위한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유럽으로 망명했다.

하페즈 아사드는 공안통치의 근간인 정보국과 강압기구의 최고 실세 자리를 알라위파로 채웠다. 하지만 수니파 출신도 적극 포용해 이들에게 군과 정부, 재계의 핵심 간부급 자리를 내주었다. 또한 주요 도시마다 상공회의소를 설치해 수니파 경제 엘리트와 상인계층의 이익을 도모했다. 시하비(Hikmat Shihabi) 육군 참모총장(1974-1998), 알-샬라(Badr al-Din al-Shallah) 다마스커스 상공회의소 의장(1980-1992), 틀라스(Mustafa Tlass) 국방부 장관(1972-2004), 카담(Abdel-Halim Khaddam) 외교부 장관(1970-1984) 및 부통령(1984-2005)이 대표적인 수니파 엘리트이다. 대대로 도시 상권을 장악해온 수니파 엘리트 그룹은 아사드 정권의 통치 자금을 확보하고 인구의 70%가 넘는 수니파의 지지를 끌어오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페즈 아사드가 정권을 잡기 전 1966년부터 1970년까지 바트당 군사사령부 위원 총 19명 중 수니파와 알라위파 출신은 각각 8명이었다. 군사사령부는 대통령 후보를 지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이다. 하페즈 아사드가 실권을 장악한 후인 1970년부터 2000년까지 군사사령부 위원 총 23명 중 수니파는 13명, 알라위파는 10명이었다(Van Dam 2011: 86). 같은 시기 군부 전체의 장교급 구성에서도 수니파가 다수였고 친정부 샤비하 민병대의 일반 대원도 수니파 출신으로 이뤄졌다. 또한 바트당의 주요 요직에 또 다른 시아파 소수 분파인 이스마일파, 소수 종교인 기독교와 드루즈교, 소수 민족인 투르크멘족 출신이 두루 포진해있었다. 하페즈 아사드는 아사드 정권의 생존을 위해 전략적으로 범종파·범민족 엘리트 연합을 공고히 했다.

2000년 하페즈 아사드가 사망하자 차남 바샤르 아사드가 대통령직을 이었다. 독재자의 세습과 함께 알라위파·수니파 정권 엘리트 연합도 아들 세대로 대부분 세습되었다. 그림 1에서 박스로 표시된 이들이 ‘권력의 아들(Awlad as-Sulta, the Sons of the Powerful)’로 불리는 대표적인 세습 엘리트 그룹이다(Ismail 2009: 17-22). 바샤르 아사드는 취임 직후 경제 개혁을 내세우며 이들 ‘권력의 아들’이 독점해오던 사업에 이권을 몰아줬다.

바샤르 아사드의 외사촌 마클루프(Rami Makhlouf)는 시리아 최대 통신 기업인 시리아텔(Syria Tel), 알-마슈렉(Al-Mashreq) 투자, 베나(Bena) 부동산 회사, 시리아 펄 항공사(Syria Pearl Airline)가 속한 샴(Cham) 홀딩스를 소유하고 있다. 외국 기업의 시리아 내 사업 허가권을 독점 발급하고 있기도 하다.

 

[그림 1] 아사드 가문과 알라위파·수니파 정권 엘리트 부자세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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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위파 세습 엘리트로는 두바 군 정보국장의 아들인 아크솜(Akthom Douba)이 대표적이며 친정부 일간지 알-리야디야(Al-Riyadiya)를 발간하는 미디어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술레이만 내무부 정보국장의 아들 마즈드(Majd Suleiman)는 시리아 최대 미디어 기업 알-와시트(Al-Waseet) 그룹의 총수이며 해외 유명 잡지의 국내 판권과 광고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수니파 세습 엘리트 그룹에는 시하비, 알-샬라, 틀라스 가문이 포함된다. 시하비 육군 참모총장의 조카 파리스(Faris Shihabi)는 알레포 상공회의소 의장을 지낸 후 현재 시리아 상공회의소 연합 의장을 맡고 있다. 프란사 은행(Fransa Bank), 알-샤르끄 은행(Al-Sahrq Bank), 시리아 아랍 보험(Syrian Arab Insurance)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알-샬라 다마스커스 상공회의소 의장의 아들 라텝(Rateb al-Shallah)은 아버지로부터 다마스커스 상공회의소 의장직을 이어 받았고 시리아 최대 자동차 수입회사인 락카(Rakha) 트레이딩의 소유주이다. 라텝의 아들 오마르(Omar al-Shallah)는 이브다 은행(Ibdaa Bank)의 총수이다. 틀라스 국방부 장관의 아들 피라스(Firas Tlass)는 식료품, 의약품, 군수품을 수입하는 마스(MAS) 그룹의 총수로 내전 발발 이전까지 시리아 유통업계를 독점했다.

 

Ⅱ. 시리아 내전의 장기화와 다종파 엘리트 연합의 공고화

8년여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은 반군과 민간인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대량살상무기 공격을 이어갔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시리아 인권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수십 편의 보고서가 지속적으로 발간되어도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물론 우방국 러시아와 중국의 도움이 있었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유엔 안보리가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 진상조사를 위해 제출한 12번의 결의안에 대해 러시아는 매번 거부권을 행사했고 중국은 6번 반대했다. 유엔 시리아 인권조사위원회는 시리아 정부에 대해 살해, 고문, 강간과 성폭력, 임의구금, 자유박탈, 강제실종을 포함한 6가지 반인도적 범죄의 혐의를 제기했다. 전투 현장에서는 이란이 가세했다. 이란의 혁명수비대는 대규모 지상 전투병을 보냈고 혁명수비대의 지휘 아래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출신 민병대도 뒤를 이었다. 러시아는 2015년부터 시리아 정부군을 위해 대대적인 공습을 벌였다.

그러나 내전의 장기화에도 아사드 정권이 흔들리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군부의 결연한 정권 수호 의지 때문이었다. 평화 시위대 무력 진압으로 시작된 내전에서 바샤르 아사드가 자국민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 행위를 단호하게 이어나갈 수 있었던 배경이다. 군부의 결집력에는 하페즈 아사드 시기부터 시작된 수니파 끌어안기 전략의 제도화가 중대한 역할을 했다. 아사드 가문이 속한 알라위파는 인구의 10% 안팎에 불과하고 70%가 훨씬 넘는 다수파 끌어안기는 독재정권의 생존 전략이었다. 197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하페즈 아사드는 1인 체제를 굳히는 과정에서 수니파 엘리트를 적극 영입했다. 바트당의 군사사령부 구성에서도 총인원 23명의 절반 이상은 늘 수니파 출신으로 채워졌다.

2000년 대통령직을 세습한 바샤르 아사드는 아버지의 유산을 철저히 이어갔다. 30년 전 하페즈 아사드가 설계해 구축해 온 아사드 가문-알라위파-수니파 엘리트 연합 체제에 대해 어떠한 변화도 시도하지 않았다. 바샤르 아사드의 부인 아스마가 수니파 출신이라는 사실도 친수니파의 상징적 신호로 작용했다. 바샤르 아사드는 원래 하페즈 아사드의 후계자가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세습독재의 후계자 수업을 받아오던 맏형 바실 아사드(Bassel Assad)가 1994년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하자 영국에서 안과 수련의 과정을 밟던 바샤르 아사드가 급히 귀국했다. 귀국 후 바샤르 아사드는 30살의 나이에 군사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후계자 준비 과정을 서둘러 시작했다.

바샤르 아사드는 집권 초기부터 지지 기반과 통치 경험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정권의 엘리트에게 기댔다. 특히 내전이 시작되자 군부 내 고위 장성급의 자율권을 철저히 보장했다. 세습 정권의 젊은 독재자가 군부의 독립성을 인정하자 군 지도부 전체의 직업정신과 사기가 올라갔고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집단적 평가 역시 높아졌다. 1970년 이래 50여년 간 아사드 가문의 부자세습 이외엔 다른 방식의 지도자 선출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정권 엘리트는 불확실한 미래 대신 현상유지를 택했다. 바샤르 아사드의 주변에는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고 독재정권을 지키기 위해 고도로 훈련 받은 소수정예 친위부대가 상주했고 내전 기간 내내 이들의 충성심은 강고했다. 고위 장성급과 최정예 부대는 물론 일반 장교단 급에서도 이탈자는 극히 적었다. 일반 사병 가운데 수니파 출신이 무리 지어 이탈한 경우만 가끔 발생했다.

다종파 엘리트 연합 구조와 자율권을 부여 받은 군부 엘리트의 충성심에 권위주의 정권의 파편화된 조직 체계가 맞물리면서 정권 수호의 집단적 시너지 효과는 더욱 발휘됐다. 시리아 독재정권의 핵심 정보기관은 적어도 4곳 이상으로 알려졌는데 각기 독자적인 구금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 기관은 아사드 정권과 측근 엘리트 보호라는 공동의 목표 하에 바트당, 군, 내무부 산하에서 서로 중복되는 보안 업무를 수행하며 일반인의 불법 연행, 구금, 심문에서 상당한 자치권을 가졌다. 내전이 장기화 되면서 자율권을 보장받고 중첩화된 조직은 일사불란한 조직 체계에 비해 외부 충격으로부터 독립성을 높여 나갈 수 있었다.

또한 아사드 세습독재 정권의 특징은 독재자 세습과 함께 정권의 측근 엘리트 역시 아들 세대로 안정적인 세습을 이뤘다는 것이다. 아들 엘리트 세대는 주로 경제 분야에 안착했다. 바샤르 아사드는 아들 세대로 이어진 경제 엘리트 연합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갑작스레 후계자 자리에 앉게 된 아들 독재자의 자신 없는 행보일 수 있으나 정권 엘리트에겐 새로운 눈치보기 게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화의 신호였다. 바샤르 아사드 시기의 엘리트는 50여년간 이어온 아사드 가문과 세습 엘리트 연합의 유착이 단단하다는 걸 확인한 후 자신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정권 수호에 매진했다. 이는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 초기 이집트 무바라크 독재정권의 엘리트가 빠른 이탈을 보였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이집트의 경우 무바라크 대통령의 후계자였던 가말(Gamal Mubarak)이 권력 승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진 경제 엘리트 연합을 독자적으로 조직해 아버지 세대의 엘리트에게 견제의 신호를 보냈다. 결국 정권의 미래가 흔들리는 위기가 찾아오자 기존 엘리트는 빠르게 이탈했다.

시리아의 ‘권력의 아들’ 세습 엘리트 대부분은 내전 기간 내내 정부군에게 자금을 댔고 민병대를 조직했다. 알-샬라 가문의 오마르는 내전 중 중고차 수입 사업을 새롭게 시작해 아사드 정권의 전쟁 자금을 지원했다. 술레이만 가문의 마즈드는 레바논과 쿠웨이트에서 출판 사업을 이어가며 아사드 정권의 돈세탁과 자금 관리를 맡았다. 마클루프는 1100여 명 규모의 알-부스탄(al-Bustan) 민병대를 조직해 반군과 싸웠다. 단 내전 발발 직후 대표적인 수니파 세습 엘리트였던 틀라스 가문은 프랑스로 망명했다. 틀라스 집안을 제외하곤 세습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다종파 엘리트 연합은 굳건했다.

몇몇 정권 엘리트는 내전을 새로운 이권 창출의 기회로 활용했다. 알라위파인 자베르 형제(Ayman Jaber, Muhammad Jaber)는 내전 시기 정부에게 원유를 독점 공급했다. 아이만 자베르는 이미 라타키아에서 샤비하 민병대를 이끈 적이 있다. 이들 형제는 700여 명 규모의 시리아 사막매(Syrian Dessert Hawks) 민병대를 조직해 동부 유전과 가스전을 지켰다. 기독교도인 하스와니(George Haswani)는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n Iraq and Syria, ISIS)로부터 원유를 불법 구매해 정부군에 제공했다. 하스와니는 시리아 최대 건설회사인 헤스코(HESCO) 건설의 소유주이며 내전을 통해 부를 빠르게 늘렸다.

한편 2014년 ISIS가 내전의 혼란을 틈타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동부 도시 락까를 수도로 삼자 중소기업가, 소상공인들은 기존의 소극적 입장을 버리고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안전을 이유로 국외로 떠난 사업가들마저 아사드 정권에 자금을 보내왔다. 세습독재 정권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발호하자 아사드 정권은 차악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Ⅲ. 시리아 독재정권의 생존과 중동 역학관계의 변화

자국 민간인을 화학무기로 학살한 아사드 세습독재 정권이 8년여 내전에서 살아남았다. 하페즈 아사드 시기부터 강화된 알라위파·수니파 엘리트 연합은 대를 이어 내구성을 강화했고 결국 독재정권을 지켜냈다.

아사드 정권의 생존에는 외부 요인도 작용했다. 국제사회가 아사드 정권의 전쟁범죄를 추궁하며 압박하자 러시아와 중국이 막아줬다. 이란 울라마 체제의 군사조직 혁명수비대는 대규모 전투병을 보냈고 장성급 40여명이 전사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시리아 내전의 승리를 발판 삼아 레바논, 이라크, 예멘, 가자지구의 친이란 급진 강경파를 지원하고 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역내 헤게모니를 장악해감에 따라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이란 보수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온건 개혁파의 입지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더불어 보수 강경파는 온건 개혁파에게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국내 권력 다툼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서 반군과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습으로 아사드 정권을 도왔다. 이후 러시아는 종전 협상을 주도해 국제무대에서 피스메이커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2018년 1월 아사드 정권과 반군 진영이 함께한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 새로운 헌법 위원회 구성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어 10월에는 터키, 독일, 프랑스를 초청해 반군 마지막 거점지역의 완충지대 설정 합의도 도출해냈다.

이란과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 이후의 중동 질서를 재편하는 가운데 터키와 카타르가 이에 합류하고 있다. 터키와 카타르는 과거 대표적인 친서방 국가였다. 선거 권위주의와 1인 체제 강화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은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터키 대통령은 러시아 주도의 종전 협상에 협력하며 역내 주요 행위자로 떠오르고 있다. 카타르는 시리아 내전 초기 반군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와의 갈등 심화로 최근 이란 밀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타밈 알 싸니(Tamim al-Thani) 카타르 국왕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경제 위기에 빠진 터키를 위해 대규모 투자 유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아사드 정권을 물심양면 지지한 이란, 러시아와 달리 미국, 유럽은 적극적 개입을 삼갔다. 내전 초기에는 미국과 유럽·중동 동맹국이 아사드 정권에 맞서 반군을 돕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 ISIS의 등장 이후 국제사회의 반군 지원은 중요성을 잃어갔다. 결국 2017년 중반 아사드 정권과 반군 사이에서 대치했던 나라들이 ISIS 격퇴를 최우선 순위에 두며 공조에 나섰다. 이어 ISIS가 패퇴했고 시리아 정부군은 주적의 격퇴를 자축했다.

미국과 유럽은 둘 사이의 갈등 때문에 전후 중동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공동의 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서방의 역내 입지 축소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따른 미국-유럽의 관계 악화에 기인한다. 2018년 5월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란 핵협정의 일방적 탈퇴를 강행했으나 유럽연합, 유엔, IAEA는 핵협정의 지속적 지지를 표명했다. 이어 12월 트럼프 행정부는 갑작스레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발표한 후 영국, 프랑스, 독일에 철군 이후 공백을 메워달라고 부탁했다. 유럽 3국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바샤르 아사드는 후원자 이란과 러시아에 전후 재건 사업을 부탁했다. 중국은 2017년 아사드 정권에 2조 달러의 재건 기금을 약속했고 2018년 다마스커스 엑스포에 200여 업체를 보내며 후발 사업자로 속도를 냈다. 이란, 러시아, 중국의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2018년 초 아사드 정권은 재건 예정지 소유자의 신고 접수가 1년 내 이뤄지지 않을 시 부동산 몰수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바샤르 아사드는 재건 시장의 이윤 배분과 함께 엘리트의 충성도 검열에 나서고 있다.

시리아 내전이 아사드 세습독재 정권의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중동의 새로운 질서는 이란과 러시아의 이익에 맞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심화되면서 이란-러시아-터키-카타르-중국의 연합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 시장경제, 다자주의를 앞세운 자유주의 질서는 중동에서 경쟁력을 잃은 채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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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Dame, Nikolas. 2011. The Struggle for Power in Syria: Politics and Society Under Asad and the Ba’th Party (New York: I. B. Tauris).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Al-Tahrikh al-Sham Badr al-Din al-Shallah” (2018); “Asad Regime Still Reliant on Fractions of the Sunni Bourgeoisie” (2017); “Council Decision 2011/782/CFSP” (2011); “Council Implementing Decision (CFSP) 2015/383” (2015); “Hal howa Fares Shihabi?” (2016); “Majd Suleiman, Sabi al-Mukhabarat wa Milianer” (2019); “Syria Business Elite” (2013); “The Syrian Business Elite: Patronage Networks and War Economy” (2016).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중동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으로도 활동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유아름
유아름

연구부문

유아름은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에 3년 수학했다. 연구관심분야는 정치사상, 민주주의, 정체성, 종파주의, 이슬람 정치, 중동 정치 및 안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