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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이 노딜로 끝났다. 하노이 정상회담에 이은 또 한 번의 협상 결렬이다. 그런데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 한 가지 의구심이 든다. ‘왜 북한은 협상장에 나왔는가’다. 김명길 대표의 발언과 이어진 북한 외무성 성명에는 협상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미국에 일방적인 요구만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그들이 말하는 협상이 또 다른 목표로 가기 위한 ‘위장전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의 의도가 의심스러운 이유는 김명길 북측 대표의 협상 결렬 발언 때문이다. 그는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나온 게 없다고 했다. 북한이 취한 핵실험 중지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 중지, 그리고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유해송환과 같은 조치에 대해 미국이 먼저 성의 있게 화답해야 그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들을 위한 본격적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먼저 제재를 해제하고,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전략자산 한반도 인근 반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주장과 반대로 미국은 북측의 발표가 8시간 반에 이르는 협상 내용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은 창의적인 협상안을 가지고 갔다고 주장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4개 합의 내용을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접근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북한의 주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도 8시간을 넘는 협상을 마치고 태연하게 기념사진까지 찍은 후에 말이다.

김명길의 발언은 처음부터 준비한 협상결렬 선언을 그대로 읊조린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기에 협상의 내용과는 무관한 일방적인 선언을 하고 12월까지 미국의 입장 변화를 기다려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처음부터 계획한 북한의 협상 전략의 하나로 봐야 한다. 북한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에 있는 대선과정에서 북한의 전략 도발을 두려워한다고 믿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대북정책 성과인 ‘핵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 중지’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렸다고 경고한 것이 그 근거다.

지난 10월 2일 동해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 3호 실험을 한 것도 이러한 셈법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을 타진하며 자신들의 협상 전략을 조율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에 해당하는 SLBM 발사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을 보며 협상의 수위를 조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북한의 도발에 침묵을 유지했다. 북한에 있어서는 약점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더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북한이 협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그것은 핵 보유의 길로 가기 위한 명분 쌓기다.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의 선행조치들은 아무리 협상이 다급한 트럼프 행정부라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제재를 먼저 해제하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먼저 중단했다가는 미국 국내의 반대 여론이 들끓게 될 것이다. 내년에 있을 대선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더 큰 장애 요인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북한은 자신들은 대화에 성실히 임했지만, 미국이 성의를 보이지 않아 새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발을 하지 않으며 핵무기도 포기하지 않는 상황을 이어갈 것이다. 이 경우 미국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 한 해 북한에 대해 다시금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불안정 상황이 조성될 때 손해 보는 건 아무런 준비 없이 정상회담을 한 트럼프 대통령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경제위기를 막고 핵 보유를 굳히는 길로 가려 들 것이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과 그 밖의 농축우라늄 시설을 동결하는 대가로 석탄과 섬유제품 수출을 3년간 허용해주겠다는 일부 보도의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문제다. 이 거래는 북한의 핵을 폐기하기보다는 결국 동결 거래로 상황이 종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난 후 제재가 작동되면 북한은 동결을 풀고 다시 핵물질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럼 다시 제재를 유예해 줘야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협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런 협상 행태를 지난 30년간 반복해 왔다.

만일 12월 이전에 실무협상이 재개되어 트럼프 행정부가 더 양보한다면 북한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핵무기와 핵물질을 포기한다는 비핵화의 최종상태를 밝히지 않고, 영변 정도의 폐기로 제재를 상당 부분 완화 받게 된다면 북한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핵물질 생산시설로 대북제재를 맞바꾸면 이미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400kg 내외의 핵물질과 핵탄두 그리고 ICBM을 계속해서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불완전 비핵화 협상이 되는 것이고, 그 결과 북한은 핵보유국을 굳히게 될 것이다.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나타난 북한의 행보는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결론은 같다. 김정은의 전략적 결단을 운운하며 외교적 고립을 탈피시켜 준 실수로 인해 북한은 핵 보유의 기회를 얻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북한을 설득해 내기 위한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지를 강구해야 한다.

북핵 문제의 해법은 김정은 정권에게 핵을 보유해서 얻는 이익보다 핵을 보유해서 지출하는 비용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제재를 철저히 유지함으로써 핵을 보유하면 평생을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한국의 억제력을 강화해서 북한이 핵을 갖더라도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경제성장을 희망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 정권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알게 만들 때 북한의 진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 본 글은 10월 07일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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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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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