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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정상회의때 제주서 묻어
한·일 갈등·코로나 등에 ‘봉인’
심장부인 사무국 자율성 부여
비전 공유… 10년 후 준비해야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 야외 조각공원에는 한국, 일본, 중국 3국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우정을 기원하는 ‘타임캡슐’이 매설되어 있다. 이 타임캡슐은 2010년 제3차 ‘한·일·중 정상회의’ 계기 만들어진 것으로 그 안에는 당시 10세(2000년생)인 3국 어린이들의 편지 2020통이 담겨 있다. 예정대로라면 타임캡슐은 2020년인 지난해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와 한·일 갈등 등으로 정상회의가 개최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잊힌 타임캡슐처럼 한·일·중 3국 협력도 잊힌 것일까.

한·일·중 협력의 역사는 3국 간 별도의 공식 정상회의가 처음으로 개최된 2008년, 길게는 3국 정상이 처음으로 회동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11월 3국 정상은 아세안+3 회의에 참석하며 비공식 조찬모임 형태로 처음 회합하였는데, 이를 3국 협력의 시초로 본다. 이후 3국 정상은 2002년부터 공식회의 형태로 만남을 이어가다 2008년에 들어서야 아세안 회의와는 별도의 3국 간 정상회의 개최에 합의하였고, 현재까지 그 노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렇듯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20여년의 기간 동안 3국은 적지 않은 협력의 진전을 이루었다. 2019년 기준, 3국 간 협의체는 정상급 2개, 장관급 21개, 고위관료급 13개, 국장급 19개, 실무급 44개가 마련되어 있으며, 경제, 문화, 환경,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적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는 단연 ‘한중일3국협력사무국’(TCS: 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 설립이다. TCS는 한·일·중 3국의 평화와 공동번영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로 2011년 9월 서울에 설립되었다. TCS 설립으로 3국 협력은 제도화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TCS는 실제로 3국 협력의 심장부이자 매개체로 3국 협력의 저변을 확대하며, 다양한 협력 메커니즘 운용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 TCS가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쉽지 않은 3국 협력만큼 언론의 관심도, 정부의 우선순위도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한국, 일본, 중국의 협력은 지리적 근접성과 유사한 문화와 사회적 배경, 그리고 높은 경제적 연계성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과제이다. 엄중한 동북아 국제정세와 나날이 격화되는 미·중 갈등,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역사·영토 문제, 그리고 3국 간 낮은 신뢰는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국 협력의 당위성은 자명하고, 이를 위해 지난 10여년간 3국 협력은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과제는 협력의 불안정성에 있다. 3국 관계지만, 양자관계에 갈등이 발생하면 정상회의가 개최되지 않는 정체현상이 일어난다. 2008년 제1회 정상회의가 2019년 8회를 마지막으로 다음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다음으로, 협력의 분야와 수준에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과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3국 협력의 수준을 높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는 정치, 외교, 안보, 역사 등 민감한 주제는 다루기 어렵다는 데 하나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어렵고 불편한 이야기는 후순위로 밀리고, 모두에게 부담 없고 편한 주제들이 우선 선택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편함에 마주하는 용기와 이를 넘어서려는 노력 없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마지막으로, TCS의 역할이다. 3국 협력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그 역할을 톡톡히 해 오고 있는 TCS이지만, 그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물론 TCS는 사무국이고, 3국 정부의 동일참여와 예산, 결정으로 운영된다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CS의 역할 증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일정 정도의 결정 권한과 자율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2010년 한·일·중 3국 정상은 향후 10년간 3국 협력의 발전 방향과 미래상을 담은 ‘3국 협력 비전 2020’이라는 공동문서를 채택한 바 있다. 지난 10년간 3국이 이루어온 발전의 성과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해 나가야 할 때이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는 21살 어엿한 청년이 된 당시의 10세 어린이들이 타임캡슐의 봉인을 해제하며 밝게 웃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 본 글은 04월 08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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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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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2007),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2009), 박사 학위(2015)를 취득하였다.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 미국 미시간대학교(2012-2013)와 일본 와세다대학교(2013-2014)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2015),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2016-2018),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2018-2019)로 재직하였다.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