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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을 둘러싼 논란으로 한반도 안보정세가 어수선하다. 마치 종전선언이 북핵폐기를 실현할 수 있는 묘약인 것처럼 인식되는 현 상황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형국이라 할 만하다. 북한매체들은 종전선언을 한갓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고 했고, 김정은도 9월 5일 우리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동맹이 약화한다거나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것은 종전선언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면서1 종전선언의 의미를 애써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기만과 선전선동에 능한 북한의 협상행태를 고려할 때, 우리로서는 북한의 입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글에서는 북한이 종전선언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분석함으로써 종전선언이 한국의 안보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파장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고 관련국 간의 신뢰를 쌓기 위한 첫 단계로 생각한다”는 입장이다.2 군사적으로 대치한 당사자들이 진정한 화해와 협력,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나선 경우라면 종전선언은 신뢰구축에 기여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도 이런 기대를 갖고 종전선언을 제의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정권이 우리 정부의 선의를 진심으로 수용하고 상응하는 선의로 보답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북한이 그동안 보여준 대남, 대미 협상전략의 실체를 고려할 때, 북한은 우리의 선의에 상응하는 선의로 보답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는 이미 핵문제에서 북한의 ‘배은망덕’(背恩忘德)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비핵화 선의를 악용하고 우리를 속이면서 핵을 보유하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핵위협이라는 분단 이후 최대 안보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정부는 실패한 비핵화 역사가 종전선언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심정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1. 북핵문제: 북한의 배은망덕과 적반하장의 결정체

 

북한의 핵개발 사실이 알려진 1991년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협력 하에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했다. 우리가 먼저 자체 핵무장을 포기한다고 선언했고, 미국도 당시 한국에 배치되어 있던 전술핵무기를 모두 철수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를 통해, 박정희 정부 이후 지속되었던 한국의 핵개발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었고, 북한이 1950년대부터 줄곧 주장해온 미국의 핵전력 제거도 완전히 실현되었다. 한미가 선제적으로 북한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핵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북한도 상응하는 조치로 보답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남북한은 1991년 12월 31일 각자의 핵무장을 포기한다는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금지하는 비핵8원칙과 핵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재처리시설과 농축시설의 보유 금지에 합의한 것이다. 요즘 북한과 한미간에 해석이 달라 논란이 되고 있는 ‘비핵화’의 정확한 의미는 남북한이 비핵8원칙을 준수하고 재처리·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외에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비핵화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 공동선언 체결 직후부터 공동선언의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이행합의서가 필요하다면서 김일성 시대에 확립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 주장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은 한미의 비핵화 용어를 차용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로 간판을 바꿔 달고 기존의 비핵지대화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비핵화 국가전략을 지난 30여년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결국 남북한 쌍방의 핵개발 포기라는 비핵화 개념을 만들어내고 선의의 표시로 선제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북한이 상응하는 조치로 보답해주기를 기대했던 우리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북한은 자체 핵무장 포기와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라는 우리의 선의에 대해 비핵화란 용어를 차용해서 핵개발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연막을 치고 혼란을 유발하면서 핵개발에 전력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그 결과 김정은이 2018년 신년사에서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북핵문제는 지난 30여년간 우리의 선의가 짓밟히고 철저하게 기만을 당한 대표적인 사례이자 북한의 배은망덕과 ‘적반하장’(賊反荷杖)의 결정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종전선언에 대한 선의가 북핵문제에서와 같이 북한에 역이용당해 또 다른 안보참사를 초래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표>: 북한의 비핵화 국가전략 진화과정

표_북한의 비핵화 국가전략 진화과정
아래에서는 북한이 종전선언을 활용해서 우리 안보에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분석했다.

 

2. 북한의 ‘종전선언’ 활용전략

 
북한 외무성 산하 평화군축연구소의 김용국 소장이 9월 5일 노동신문에 게재한 논문에는 종전선언에 임하는 북한의 근본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김 소장은 ‘조선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은 시대의 절박한 요구’라는 제목의 글에서 종전선언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3

“원래 정전이란 교전쌍방 간 전투행동의 일시적 정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전쟁의 종결이 아니며 따라서 정전협정의 유지만으로는 완전한 평화가 담보될 수 없다….,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정치적 의지의 발현으로서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첫 공정이다…, 당사국들의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종전선언부터 채택하여 전쟁상태부터 끝장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글은 북한이 종전선언을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의 첫 단계로서 전쟁상태를 끝내고 완전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종전선언이 채택된 후 북한이 추진할 대내외 전략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북한은 종전선언 채택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를 가속화하면서 한미를 상대로 전쟁상태가 끝난 한반도에서 완전한 평화를 이루기 위한 관련 조치를 줄기차게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종전선언 채택 이후 북한의 전략 추진방향을 북한내부, 대남, 군사, 외교, 핵 분야로 나누어 분석했다.

(1) 북한내부

종전선언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 이어 對美 대결전에서 거둔 또 하나의 승리로 선전하면서 김정은 정권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는 소재로 활용할 것이다. 김정은이 정권수립 70주년을 계기로 그동안 북한을 짓눌러 온 전쟁상태를 청산함으로써 선대에서도 이루지 못한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고 선전할 것이다.

(2) 대남분야

종전선언으로 전쟁상태를 끝내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의 첫 발을 뗀 만큼 남북간에 화해협력의 기반이 조성되었다고 선전하면서 인적교류와 대규모 경협을 주도하고자 할 것이다. 아울러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를 띄워 남북간 군사적 대치의 실상을 왜곡하면서 우리 사회에 ‘안보에 대한 환상’을 확산시키고 우리 국민들의 대북 경계감을 이완시켜 나갈 것이다. 특히 ‘우리민족끼리’ 구호 아래 “북한의 핵도 결국 우리 것이며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핵을 사용할 리는 만무하다”는 논리를 전파하면서 북한 핵에 대한 위협감을 약화시키고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북한이 핵을 보유한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할 것이다.

(3) 군사분야

한미를 상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상태가 종식된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걸맞는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그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다양한 조치를 추구할 것이다. 전쟁이 끝난 한반도의 현실과 동맹에 기초한 주한미군 주둔 간의 괴리를 부각하면서 주한미군의 규모와 활동, 한미연합 훈련의 성격과 빈도 등을 줄이도록 요구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미 연합훈련의 축소와 중단,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차단, 핵우산보장 약속 폐기, 사드배치 철회, 미국의 對韓 신형무기 판매 금지 등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전력 약화를 야기할 수 있는 각종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특히 주한미군의 성격을 ‘한미 동맹군’에서 ‘지역안정을 보장하는 균형자’로 변경하도록 함으로써 유사시 남북한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 주한미군이 한국방어에 나서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이런 요구가 하나하나 수용될 경우 한미동맹은 점차 이름만 남은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4) 외교분야

한반도에서 전쟁상태가 종식된 만큼 국제사회도 새로운 시대의 기조인 화해와 협력에 기여해야 한다면서 대북제재 약화를 유도할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미동맹이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여론을 확산시킴으로써 한미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아울러 아시아에서 북핵문제를 고리로 벌어지고 있는 ‘중·러 對 미국’의 강대국 경쟁에 편승해서 중·러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면서 미국의 대아시아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대남, 대미 요구사항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다.

(5) 핵분야

대외적으로 비핵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핵을 보유했기에 미국을 굴복시키고 미북 정상회담과 종전선언이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선전하면서 핵무력의 정당성을 강조할 것이다. 아울러 핵을 보유한 미국의 영향력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핵무력을 포기할 수 없다면서 핵보유의 당위성을 강화해나갈 것이다.

* 본 글은 09월 14일 ‘국회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 1. 김정은, “종전선언은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 철수와는 무관,” 경향신문, 2018년 9월 7일.
  • 2. 정의용 특사의 방북결과 설명회 발언, 연합뉴스, 2018년 9월 6일.
  • 3. 북 외무성 “종전선언이 평화구축 첫 공정,” 경향신문, 2018년 9월 6일.

About Experts

전성훈
전성훈

연구부문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