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아직 좀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2021년 초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의 행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벌써부터 새 행정부의 대 아시아 정책, 대 중국 정책 등에 대한 무수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중 몇몇은 동남아시아와 아세안에 초점을 두고 있다.1 바이든 행정부의 동남아 정책, 아세안 정책은 원칙(principle)과 관여(engage) 사이 어디쯤 놓일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이 부통령을 지냈던 오바마 행정부의 동남아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물론 미국의 중국 정책도 동남아 방면에 대한 미국 새 행정부 정책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요소들을 종합해 볼 때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방기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라는 원칙, 그리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역 국가들과 거리를 좁히는 관여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동남아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두 키워드 내에, 그리고 키워드 간에 일정한 긴장이 있다는 점이다. 중국 견제를 위해 동남아 국가들과 거리를 좁히는 관여 정책은 전반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이 반길만한 정책이다. 한편 중국 견제를 위해 원칙과 가치를 강조할 때 일부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이 제시하는 민주주의, 인권 등의 원칙과 가치로 인해 미국과 긴장 관계에 놓일 수 있다. 일부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의 관여는 좋지만 민주주의, 인권 등 원칙이 반갑지만은 않다. 미국의 중국 압박 정책인 원칙과 동남아 관여 정책이 내적 모순을 일으키는 지점이다. 나아가 관여와 원칙 여부를 떠나 대 동남아 정책이 미국의 중국 정책의 수단이 되는 듯한 인상이 강하면 이 또한 동남아 국가 입장에서는 그리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동남아 정책의 결정 요인과 방향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 예상되면서 새 행정부의 대외정책 방향에 관한 관측과 예측이 많다. 이런 예측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공통된 요소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강화,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리더십 회복,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중국 정책이 중요할 것이라는 점이다.2 그리고 이런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 전략은 바이든이 부통령을 지냈던 오바마 행정부의 경험,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남긴 유산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 정책은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리더십을 크게 약화시켰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의문시되었던 미국의 힘과 리더십을 그나마 아시아에서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은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혹은 재균형(rebalancing)이라는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인 아시아 정책 때문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에서 급격히 이탈했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명분 아래 동맹과의 협력 관계를 경시하고, 중국과의 전략 경쟁을 통해 지역 불안 요소를 가중시켰다. 환태평양경제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등 아시아 국가와 다자적 약속도 깼다. 글로벌 차원에서 WTO, WHO, 기후변화협약 등 다자협력에서 이탈하고, 더 큰 차원에서 인권, 민주주의 등 가치와 원칙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크게 약화된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리더십의 재강화일 것이다.3 구체적으로 동맹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서 아시아 지역의 자유주의 질서를 다시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기후변화, 보건 협력 등 공통의 과제를 다자적으로 해결하는데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4 경제적으로는 자유무역을 다시 강조하고 이를 다자적 접근을 통해서 실현하려 할 것이다. 그에 따라 아시아 지역의 자유무역,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 역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5 동맹과 자유무역, 그리고 다자협력이 형식이라면, 내용적으로는 원칙과 규범, 가치에 대한 강조가 따라올 것이다. 중국의 비자유주의적 움직임에 맞서 역내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의 내용은 채워질 것이다. 이미 바이든 당선자는 취임하고 나서 민주주의 정상회의(democracy summit)를 개최해 민주주의 국가를 규합하고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를 압박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6

자유주의 질서의 강화와 미국의 리더십 회복과 함께 주목을 받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중국에 대한 전략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 중국 전략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면서도 중국과 건전한 경쟁을 모색했다면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 전략은 명확하게 중국과 경쟁을 넘어선 중국 봉쇄의 방향으로 나갔다.7 다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을 봉쇄하고 압박하는 전략이 효과적으로 추진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트럼프의 대 중국 전략은 고립된 사안에서 중국에 위협을 가하고 이를 통해 일정한 양보를 얻어내는 체계적이지 못한 전략이었다. 중국에 대한 압박이 자유주의 질서 강화가 아닌 트럼프의 국내적 입지와 인기 강화를 위해 활용되었다. 중국의 부상과 위협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교한 전략은 크게 보이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 중국 전략도 중국의 위협을 해결해야 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 중국 정책의 기본 방향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중국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는 것이 당파를 떠나 미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이기 때문이다.8 다만 방법론에서는 바이든과 트럼프가 차이를 보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해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이념 경쟁으로 확산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서 사안별로 압박을 하기 보다는 민주주의, 인권, 자유무역, 다자주의와 같은 규범과 원칙, 그리고 가치의 문제를 가지고 중국의 행동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단독 행동이 아닌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국가와 다자적 전선을 결정할 가능성도 높다. 이렇게 된다면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못지않게 미국과 중국 사이 이념 전쟁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더 격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개별 국가 관여 강화와 원칙의 충돌

바이든 행정부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강화하고 이 국제질서 속 리더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한편 중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는 수정주의적 국가라는 인식 하에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가치와 원칙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이런 미국의 대외정책, 대 중국 정책에서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미국의 자유주의적 질서와 리더십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그리고 중국을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상정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남아 개별 국가와 거리를 좁히며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 할 것이다. 동시에 아세안 주도의 지역 다자협력체와 여타 다자 협력의 제도에 관여하고, 여기서 가치와 원칙을 강조하며 중국을 몰아세우려 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 동남아 정책의 방향 두 가지 중 첫 번째 항목은 개별 동남아 국가에 대한 관여(engagement) 강화다. 개별 국가와의 거리 좁히기가 특별히 중요한 과제가 되는 이유는 트럼프 시기 동남아 국가와 관계가 관리되지 않고 거의 방치되었기 때문이다. 개별 국가와 거리 좁히기는 단순히 트럼프 시기 외교 정책의 문제를 극복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의 대 중국 정책에 중요한 함의를 가지기도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 전략 경쟁은 많은 지역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동남아 지역은 미-중 전략 경쟁이 시작되는, 그리고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남아 개별 국가와 관계 복원을 꾀하는 목적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두 가지로 파악된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 시기 크게 손상된 미국에 대한 신뢰,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자유주의 국제질서, 지역에서 리더십을 포기한 미국을 보면서 동남아 국가들이 느꼈던 상실감 혹은 불안감은 매우 컸다.9 이 국가들을 중심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 양자 관계를 강화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동남아 지역에서 몇몇 국가들이 특히 미국의 신뢰 회복이란 측면에서 중요하게 꼽힐 수 있는데, 이 국가들은 중국의 수정주의에 따라서 전략적 압박을 받던 국가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는 강대국의 균형을 통해 동남아 개별 국가와 아세안이 지역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누리고, 나아가 이를 신장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국가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의 약한 관여로 인해 중국의 지역 내 영향력이 커지는데 대해서 공통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역시 지역 국가들의 자율적 전략공간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와 이익을 같이하며 미국의 더욱 강한 관여를 원하는 국가다. 베트남은 중국과 남중국해에서의 대립 관계 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경제성장을 위한 미국의 필요성으로 인해 동남아 어느 국가보다 미국의 동남아 지역 관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다.

이런 국가들의 반대쪽 스펙트럼에는 미국이 공략해야 하는 중국 쪽으로 경사된 국가들이 있다. 이런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 실현이란 관점에서 미국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제한적인 반면 중국으로부터 더욱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또한 개별 국가의 국내 혹은 대외적 환경요인으로 인해 미국 쪽으로부터 멀어진 국가들이다. 지금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태국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구분은 장기적이거나 영구적인 것은 아니며 상황 변화에 따라서 필리핀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취하는 태도처럼 매우 유동적인 경우도 있다.

필리핀은 트럼프 행정부 내내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며 양쪽으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행태를 보였다. 경제적 지원에 대해서는 중국으로부터, 그리고 마라위(Marawi) 사태 등 안보 문제에서는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얻어냈다.10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중국에 국경이 인접한 개발도상국으로 미국의 지원보다는 중국의 경제적 지원과 직접적 압력 앞에 취약한 국가들로 전통적으로 미국 보다는 중국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해온 국가다. 미얀마는 2011년 군부통치가 막을 내렸을 때만 해도 미국 등 서방국가의 관심이 쏠렸으나, 이후 로힝야(Rohingya) 사태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하면서 상대적으로 중국에 가까운 행보를 보인다.11 태국 역시 2014년 군부 쿠데타 이후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중국 쪽에 보다 가까운 행태를 보인다.12

미국 입장에서 후자의 국가들은 2010년대 초 오바마 행정부에서 피봇 정책을 펼칠 때 미얀마와 같은 성격을 가진 국가들이다. 피봇 정책을 선언한 오바마 행정부는 2000년대 말 아세안이 이미 중국과 미국의 영향권으로 양분되었다는 평가를 극복해야만 했다.13 이는 동남아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과 신뢰 뿐만 아니라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동남아 개별 국가와 관계를 더 가깝기 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동시에 당시 동남아 지역에서 미국의 접근이 어려웠던 마지막 국가인 미얀마에 꽤 큰 공을 들였다.14 결국 2011년 미얀마가 군사통치가 종식되고 정치 개혁을 시작하면서 미국은 미얀마에 접근할 수 있었고, 미얀마에서 중국이 배타적으로 누리던 지위를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할 동남아 국가와의 거리 좁히기, 특히 중국 쪽으로 경사된 국가와의 거리 좁히기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얀마와 관계 회복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동남아 국가와 거리를 좁혀 신뢰와 리더십을 회복하는 동시에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정책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안에는 내재된 모순도 존재한다. 미국의 대 중국 정책이 원칙과 가치, 즉 민주주의, 인권 등의 문제를 가지고 중국을 압박하는 정책의 방향으로 간다면 이런 방향과 동남아 개별 국가 관여 정책은 서로 모순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원칙과 가치의 적용이 중국에게만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면 이는 중국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면서 다른 국가의 민주주의나 인권 문제에는 개의치 않았던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 다를 바가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차별성을 보이고 보편적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을 가치와 원칙의 문제로 압박하고자 한다면 이런 원칙은 어느 국가에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원칙은 동남아 개별 국가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미국이 동남아 국가와 거리를 좁히는 정책을 취하는 동시에 가치와 원칙 문제도 함께 가져간다면 이런 정책은 적어도 태국,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그리고 잠재적으로 베트남에서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태국은 2014년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이 2019년 선거를 통해 집권하고 있다. 현 쁘라윳 (Prayut Chan-O-Cha) 총리의 퇴진과 군부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 개정을 외치며 2020년 중순부터 일어나고 있는 시위를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는 바이든 행정부가 외면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캄보디아 훈 센 (Hun Sen) 총리의 장기집권과 민주주의 훼손, 미얀마에서 몇 년째 일어나고 있는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군부의 탄압과 아웅산 수치 정부의 외면 등 캄보디아와 미얀마 역시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측면에서 미국의 대 동남아 거리 좁히기와 긴장 관계에 있다. 동남아에서 가장 친미적인 태도를 취하는 베트남도 인권 문제로 인해 이전 미국 행정부와 자주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15

 

아세안 주도의 다자 제도 관여 강화와 효과성의 딜레마

바이든 행정부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차별성을 보이는 대 동남아 정책의 두 번째 항목은 아세안 주도의 다자제도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아세안이 주도하는, 즉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이 적용되는 지역 다자제도로는 아세안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아세안+3 (ASEAN+3),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확대아세안국방장관회의(ASEAN Defense Ministers’ Meeting, AMDD+)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미국은 아세안 10개국과 한, 중, 일 3개국을 회원으로 하는 아세안+3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개 다자협력체의 회원국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전 트럼프 행정부와 차별성을 보이며 동남아 지역에 더 깊이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아세안 주도의 다자협력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잠식하기 위한 전략으로 지역 다자협력에 꾸준히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 중심의 다자협력체는 2011년 미국이 EAS에 가입한 이후 줄곧 미국과 중국이 전략 경쟁을 벌이는 장이 되어왔다. 특히 아세안 일부 국가와 중국 사이 해결되지 않은 남중국해 문제, 그리고 확장된 남중국해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남중국해에서 항행과 비행의 자유 등의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은 이 지역 다자협력 회의 때마다 충돌을 벌였다.16 EAS에 가입한 오바마 행정부 시기의 적극적인 관여를 뒤로 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 지역 다자제도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17 미국이 이 다자 회의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이 중국이 이 회의들에 참여하는 유일한 글로벌 강대국으로 영향력을 확장해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환태평양경제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에서 빠지고 지역 다자협력을 등한시하는 사이 중국이 포함된 아세안 주도의 지역포괄적경제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이 마무리된 것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런 지역 다자회의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은 일단 꾸준한 참여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태담당 차관보를 지낸 커트 캠벨(Kurt Campbell)이 그의 책에서 우디 알렌(Woody Allen)의 말을 인용해 언급한 것처럼 “아시아 외교 성공의 80%는 일단 출석하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꾸준히 이 다자회의들에 출석만 한다 해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18 적어도 꾸준한 출석을 통해서 올해처럼 EAS가 중국의 독무대가 되었다는 식의 평가를 차단하고 이 다자회의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라는 인상도 불식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세안은 아세안이 주도하는 이 다자회의에 미국이 꾸준히 참여하는 것을 크게 환영할 것이다. 미국의 꾸준한 참여는 이 회의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높이고 위상을 높이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역 다자회의 참여는 아세안과 아세안 개별 국가들과 미국의 거리를 좁히고 관여를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가 다자회의에 꾸준히 참여하는 것도 잠재적으로 한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단순히 이 다자회의에 꾸준히 참여하는데 만족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미국은 꾸준한 참여를 넘어 중국에 대한 압박을 위해 이 다자회의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유인에 빠질 수도 있다. 아세안이 주도하는 지역 다자회의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규칙과 규범에 기반하지 않은 연성 제도라는 특징을 가진다. 다자협력의 틀이라 해도 구체적인 합의도,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제도도, 그리고 그에 따른 강제 규정도 약한 다자협력이다.19 미국은 이런 제도에 대한 참여를 넘어 이 연성제도를 보다 효과성 있는 제도로 바꾸고, 이 제도를 통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원칙과 가치를 구현하려 할 수 있다. 이런 계획의 목표는 중국도 참여하고 있는 이 다자제도들을 통해 중국에 원칙과 가치를 앞세운 압력을 넣으려는 것이다. 나아가 아세안 주도의 이 제도들이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를 구현하는 방향과 중국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자연스럽게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 진영으로 넘어오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아세안 주도의 다자 제도 단순 참여를 넘어 이 제도들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미국 입장에서는 그럴듯한 전략일 수 있으나 아세안 국가들의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다. 아세안 국가들이 현재의 ARF, ASEAN+3, EAS 등 아세안 주도의 다자협력을 통해 추구하는 바는 강한 법적, 제도적 기반을 가지지 않은 매우 유연한 제도다. 이런 유연한 제도와 규칙을 통해 아세안 국가들의 주권과 자율성을 제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강대국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아세안 주도의 지역 다자제도에 강대국을 끌어들이지만, 이 강대국들이 아세안의 자율성과 주권을 제약하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균형을 찾는 전략이다.

만약 미국이 혹은 특정 강대국이 이 제도들에 강력한 규칙과 원칙을 적용하면 이는 중국을 압박하는 것을 넘어 아세안 국가들 자신도 압박하고 구속하는 효과를 가진다. 만약 미국이 자신의 의도대로 아세안 주도 지역 다자협력을 재구성하고자 한다면 이런 미국의 전략은 아세안 국가들의 저항을 가져오고 오히려 아세안 국가들을 중국 쪽으로 가깝게 만드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아세안 중심의 지역 다자 제도에 성실히 참여하는 것은 아세안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미국의 관점에서는 충분치 못하다. 반면 미국이 참여해 이 다자제도들을 미국의 의도대로 원칙과 가치에 기반해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려 한다면 미국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만 아세안 국가들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 들어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전반, 그리고 대 동남아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와 크게 다르다. 굳이 유사한 모습을 찾자면 오바마 행정부의 피봇 정책과 더 가까운 모습을 띨 것이다. 개별 국가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고, 아세안 주도 다자 제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전략, 즉 아세안 지역과 아세안 주도 다자 제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있다. 반면 미국의 대 중국 견제 방식으로 예상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민주주의, 인권 등 가치와 원칙은 필연적으로 몇몇 동남아 국가에서 미국의 관여 정책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이 지역 다자 제도를 원칙과 가치에 기반한 제도로 만들어 중국을 압박하려 할 때도 이런 미국의 노력은 아세안 지역에서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대 동남아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 동남아 무관심과 대조적으로 동남아에서 환영 받을 만하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 동남아 전략이 동남아를 일차적 목표로 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중국에 대한 전략 혹은 수단이 된다면 곤란하다. 이런 방향은 중국에 대한 전략으로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동남아에서는 반발을 불러오고 오히려 동남아 국가들을 중국 쪽으로 더욱 경사되게 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동남아 국가들도 미국의 대 동남아 정책에 상당한 정도로 미국의 대 중국 정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미국의 동남아 정책이 너무 가시적으로 미국의 중국 정책의 수단으로 비쳐질 경우 동남아 국가들은 이를 매우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대표적으로 James Crabtree. 2020. “Team Biden Should Start with an Asia Pivot 2.0” Foreign Policy. October 19.; Ian Storey and Malcolm Cook. 2020. “Trump vs Biden: Who makes a better choice for Southeast Asia” ThinkChina. October 09.; Donald K. Emmerson. 2020. “Biden in Asia: America together?” East Asia Forum. 8 November.; Tan See Seng. 2020. “US Presidential Election 2020 – What Might ASEAN Expect from Biden?” RSIS Commentary No. 20196. 17 November.
  • 2. Thomas Wright. 2020. “The Fraught Politics Facing Biden’s Foreign Policy” The Atlantic. November 22.; Van Jackson. 2020. “Biden’s China Policy Can’t Help but Be Incoherent” Foreign Policy. August 13.
  • 3. Karen DeYoung. 2020. “Biden foreign policy beings with telling the world: America’s back” The Washington Post. October 22.
  • 4. 이미 바이든은 외교안보팀 내정자 발표에 전 국무장관인 존 케리(John Kerry)를 대통령 기후변화 특사(Special Presidential Envoy for Climate)로 내정했다.
  • 5. 오바마 정부에서 추진했던 TPP를 임기 초에 다시 부활시키기는 어려 환경으로 인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이는 관측도 있는 반면, 적어도 바이든 행정부도 무역 관련 규칙과 규범을 미국 주도로 형성하려는 의지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BBC. 2020. “Biden vows to set rules of the road on trade” BBC. 17 November.; Nikkei. 2020. “Eyes on Biden’s TPP move as China joins mega trade deal RCEP” NikkeiASIA. November 16.
  • 6. Nahal Toosi. 2020. “Are you on the list? Biden’s democracy summit spurs anxieties – and skepticism” Politico. November 28.
  • 7. 오바마 행정부의 대 중국 정책, 그리고 행정부 내 서로 다른 기관들이 가지고 있던 서로 다른 중국에 대한 인식과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커트 캠벨 지음, 이재현 옮김. 2020. 피벗: 미국 아시아 전략의 미래. 아산정책연구원. 60-63쪽을 볼 것.
  • 8. David Shambaugh. 2018. “The New American Bipartisan Consensus on China Policy” China and US Focus. 21 September.; Zoe Leung and Michael Depp. 2019. “An American Consensus: Time to Confront China” The Diplomat. January 17.; and Daniel W. Drezner. 2020. “Meet the new bipartisan consensus on China, just as wrong as the old bipartisan consensus on China” The Washington Post. April 28.
  • 9. Ian Storey and Malcolm Cook. 2020. “The Trump Administration and Southeast Asia: Half-time or Game Over?” ISEAS Perspective. 2020-112.; Byron Chong. 2020. “The Trump administration’s record on Southeast Asia” Observer Research Foundation. September 23.; Melissa Conley Tyler. 2020. “Will the Next President Restore American Leadership in Asia?” PURSUIT, University of Melbourne (https://pursuit.unimelb.edu.au/articles/will-the-next-president-restore-american-leadership-in-asia).
  • 10. 이재현. 2020. “필리핀-미국 방문군협정(VFA) 폐기: 양자 군사동맹에 대한 함의와 미래”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 2020-06.
  • 11. Jane Cai and Laura Zhou. 2020. “China turns to Myanmar as the friendly giant in the neighbourhood” South China Morning Post. 17 January.
  • 12. Patrick Jory. 2014. “China is a big winner from Thailand’s coup” East Asia Forum. 18 June and Shawn W. Crispin. 2015. “Thai Coup Alienates US Giving China New Opening” Tale Global Online. March 5.
  • 13. Geoff Wade. 2010. “ASEAN Divided” New Mandala. 23 December.
  • 14. 미국은 1990년 이후 미얀마에서 군부가 재집권한 이후 지속적으로 미얀마에 경제 제재를 해왔고, 피봇 정책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이 유일하게 접근하지 못하는 국가로 남아 있었다. Lex Rieffel and Yun Sun. 2012. “Obama in Burma” Brookings Institution. November 16.
  • 15. 흥미롭게도 2020년초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 (Institute of Southeast Asia Studies) 진행한 동남아 국가 전문가 및 엘리트 인식조사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둘 중 한 국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베트남은 85.5%라는 압도적 다수가 미국을 선택해 동남아 국가 중 가장 친미적인 태도를 보였다. 85.5%는 동맹 국가인 필리핀 (82.5%), 싱가포르(61.3%)와 아세안 평균(53.6%)을 크게 웃도는 숫자다.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2020.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0: Survey Report. Singapore: ISEAS. P. 29. 베트남 인권문제로 인한 미국과의 갈등은 Carol E. Lee. 2016. “Barack Obama Voices Human-Rights Concerns in Vietnam” The Wall Street Journal. May 24.
  • 16. 이재현. 2020. “미-중 전략 경쟁 속 아세안 잠재력 극대화: 내적 단결과 지역 중소국가 연대”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 2020-15.
  • 17.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네 차례의 EAS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아세안국가와 미국 사이 양자로 열리는 ASEAN-US 정상회의 (ASEAN-US Summit, ASEAN-US Leaders’ Meeting) 역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2017년 한 번만 참석했고, 2020년에는 코로나로 연기되었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의 경우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총 8번의 EAS 중 5회 (2011, 2012, 2014, 2015, 2016) 참가했다. ASEAN-US 정상회의 역시 2013년을 제외하고 7회 모두 참석했다.
  • 18. 커트 캠벨 지음, 이재현 옮김. 2020. 피벗: 미국 아시아 전략의 미래. 아산정책연구원. 367쪽.
  • 19. Tan See Seng. 2017. “Not Quite Beyond the ‘ASEAN Way’? Southeast Asia’s Evolution to Rules-based Management of Intra-ASEAN Differences” in Aileen Baviera and Larry Maramis eds. Building ASEAN Community: Political-Security and Socio-cultural Reflections. Economic Research Institute for ASEAN and East Asia (ERIA): Jakarta. Pp. 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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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대외협력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아세안-대양주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