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고문

이슬람혁명·아랍의 봄 때
국왕·독재자 순식간 몰락
남베트남 투항도 예상밖
아프간 붕괴 역시 그랬다

예측은 또 빗나갔다.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의 거침없는 진격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아무도 가늠하지 못했던 일이다. 올해 4월 초 바이든정부는 아프간 주둔 미군의 철수 계획을 발표했다.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 20주년에 맞춰 철군을 완료한 후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반군의 평화를 기원할 계획이었다. 계획은 완전히 어긋났다. 8월 15일 아프간 체류 미국인의 대피가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탈레반은 카불의 대통령궁을 접수했다. 이틀 전만 해도 전국 주요 도시의 절반 정도가 탈레반 손에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이틀 만에 탈레반은 카불을 탈환해 아프간 재집권을 선언했다.

프랑스 혁명, 소련의 몰락처럼 거대한 정치 격변은 사후적으로만 분명하다. 격변을 이끈 세력마저 당장 내일의 일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번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쪽으로의 갑작스러운 쏠림을 야기하는 티핑포인트에 이르기 직전까지 폭발의 압력은 쌓이기만 할 뿐 표면적 정치 상황은 그대로다. 당연히 정치적 폭발을 미리 감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부패와 불신, 위선이 만연한 사회라면 더욱 그렇다. 모두가 모두를 서로 오해하면서 폭발의 전조 현상은 가볍게 무시된다.

1975년 북베트남 군대가 사이공에 진격했을 때 남베트남 군대가 별다른 저항 없이 투항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이 일어났을 때 미국 CIA는 레자 팔레비 국왕의 국외 탈출을 나흘 전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최정예 비밀경찰 사바크와 40만 현대식 군대를 보유했던 국왕이 비무장 반정부 시위대 앞에서 쉽게 몰락하리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튀니지와 이집트의 장기 독재자들이 시위 발발 한 달 만에 모든 걸 포기하고 무너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불만과 배신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지만 사건이 폭발하는 순간 모두가 황망해질 뿐이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정부는 알카에다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전쟁을 선포했고 속전속결로 이들을 축출했다. 같은 해 12월 미국은 아프간 부족장회의 원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최대 부족이자 탈레반의 영향력이 지대한 파슈툰족 출신 하미드 카르자이에게 임시정부의 대통령직을 맡겼다. 2004년 첫 민선 대통령이 된 카르자이는 수도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카불 시장’이자 미국의 꼭두각시로 여겨졌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측근과 카불의 엘리트 집단은 거대한 부패 카르텔을 형성해 국제원조금을 착복했다. 군경의 훈련과 장비 구축을 위한 재정은 늘 부족했고 사병들의 사기는 날로 떨어졌다. 부정선거 논란 끝에 2014년 당선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 역시 부패 꼬리표를 달고 다녔고 탈레반의 카불 장악 직전 거액을 챙겨 해외로 도망갔다.

탈레반은 이슬람 교리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극단적 여성정책과 폭압정치를 정당화한다. 과거 탈레반 집권기 아프간 여성은 일을 하거나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여성 의사가 사라진 병원에서 남성 의사가 여성 환자를 법적으로 치료할 수 없게 되자 여성 사망자가 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은 채 눈만 망사 사이로 내놓는 부르카 때문에도 여성 교통사고 사망자가 급증했다. 화장, 커트, 손톱 손질이 금지됐고 크게 웃거나 혼자 이동해도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탈레반은 카불 입성 후 변화된 통치를 선언했으나 이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주민들은 책과 TV를 숨겼고 수염을 기르며 부르카를 꺼내 입었다. 현재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이 아프간에 빠르게 몰려들고 있다. 외부 제국이 아프간 안정화에 실패한 것처럼 탈레반이 이들 극단주의 세력 간 과도한 주도권 다툼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결국 잔혹한 테러가 아프간 곳곳을 뒤덮을 것이다.

* 본 글은 09월 01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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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