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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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4일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제 2 국제공항 (Kuala Lumpur International Airport 2, KLIA2)에서 괴한에 의해 피살되었다. 국내외 뉴스는 누가 김정남 피살 이면에 있는가에 관심을 두고 북한 내부 사정과 이 사건을 연결하는데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직 부검 결과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북한인 한사람을 포함한 몇 명의 피의자가 검거되기는 했지만, 핵심으로 추정되는 북한인들은 이미 말레이시아를 빠져나갔다. 직접 범행을 저지른 베트남인, 인도네시아인의 가담 동기 등 많은 부분이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 사건의 해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어쩌면 북한 체제의 특수성으로 인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 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흐른 이후가 될 것이고 이 사건은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질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구체적인 사건 자체와 북한 문제가 아니라 다른 측면, 보다 광범위한 사건의 이면에 눈을 돌려볼 필요도 있다. 관심을 두어야 할 사안은 두가지다. 첫번째로 동남아와 북한의 관계다. 왜 이런 사건이 말레이시아, 동남아에서 발생했는가? 북한-동남아는 어떤 관계이며, 북한이 동남아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떻게 이런 활동이 가능한가? 두번째는 한국과 동남아 관계다. 한국은 이번 사건의 직접 당사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다. 한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은 이 사건에 대해서 너무 앞서 나가서는 안되며 북한 문제 관련해 동남아 국가들을 너무 압박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장기적 관점으로 초국가적 범죄 문제에 초점을 두고 동남아에서 북한의 불법 활동을 억제하고 우리의 재외국민 보호에도 도움이 되는 한-아세안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
 

북한의 동남아 인식, 동남아의 북한 인식

현재 한국과 동남아 관계는 그 어느 때 보다 돈독하다. 수많은 양자협력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다자협력 틀 안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동남아는 한국의 제 2위 무역상대지역이다. 한국의 대 동남아 무역 규모는 대 일본, 대 미국, 대 유럽 무역 보다 크다. 동남아는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 지역이다. 인적교류를 포함한 사회문화 교류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한류의 확산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전반적 이미지도 매우 좋다. 이런 한-동남아 관계가 향후 더 진전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남아 국가들도 한국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동남아 관계와 북한-동남아 관계를 동등하게 취급한다. 긴밀한 한-동남아 경제, 사회문화 관계로 인해 동남아에서 북한이 설자리가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주권존중, 불간섭이란 비동맹 전통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의 생존 전략 차원에서도 동남아 국가들은 모든 주권 국가를 똑같이 취급한다. 모든 국가들과 등거리 관계를 가지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외교 행태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한국과 동남아 국가 관계가 아무리 긴밀하다고 해도 이 때문에 동남아 국가들이 북한과 관계를 단절하거나 북한과 소원하게 지내지는 않는다.

동남아에서 북한의 (외교) 활동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비교적 자유롭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북한 여권으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동남아 대부분 국가들이 북한의 핵문제, 북한의 대남 도발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북한에 대한 UN 제재에 다양한 수위로 동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지역은 국제 사회의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력으로부터 북한이 비교적 자유로운 지역이다. 많은 동남아 국가에서 UN 제재가 강력히 실행되지 않는다. 국제무대에서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하기 보다는 남북 사이 중립적 입장을 늘 취해왔다. 매년 여름 아세안안보포럼 (ASEAN Regional Forum, ARF) 의장 성명에 남과 북의 주장이 똑같이 포함된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북한 입장에서 동남아 지역은 마치 북한 지도부가 안심하고 자녀들을 유학 보내는 스위스 등 유럽 중립국가처럼 남과 북 사이에 비교적 중립적인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세안에 속한 동남아 10개국은 모두 한국과 북한의 동시수교 국가들이다. 이 중에서 라오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등은 평양에 대사관을 설치하고 있고, 북한은 라오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베트남에 대사관을 설치하고 있다. 평양과 동남아 국가 수도 모두에 대사관을 상호 설치하고 있는 나라는 라오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5개국이다. 이 중에서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3개국은 과거 공산권 국가였거나 아직 공산당 일당 통치하에 있다. 과거 국가 관계 혹은 현재 당대당 관계가 있으므로 이들 국가와 북한은 특수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제외하고 대사관이 상호 설치된 두개 국가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다.

 

북한-동남아 국가 수교 및 공관 설치 현황1
표1.북한-동남아 국가 수교 및 공관 설치 현황

대사관 설치, 수교국이라는 외교관계를 넘어서 동남아 국가들의 외교전통을 보면 동남아 국가의 북한에 대한 태도, 그리고 왜 북한이 동남아에서 비교적 자유로움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있다. 동남아 지역에서 남-북의 힘과 지위가 역전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성장, 냉전 종식 등을 거치면서 남과 북의 위치가 바뀌었다. 1960년대, 1970년대 한국과 북한 사이 체제 정통성 경쟁이 있을 당시만 해도 동남아 지역에서는 북한이 한국에 비해서 더 강력한 외교력을 발휘했다. 동남아 지역에서 북한의 외교활동이 한국에 비해서 훨씬 활발하고 강력했다. 한국은 늘 북한을 쫓아가는 상황이었다. 물론 최근 동남아에서 남북간 상대적 힘의 역전에 따라,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따라 북한의 활동 여지가 줄어들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북한이 동남아에 건설해 놓은 전통적 관계와 네트워크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히 과거 북한의 대 동남아 외교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는 아직 남아 있다. 이런 과거 역사가 북한이 동남아에서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활동의 자유를 느끼는 한 원인이다.

두번째로 동남아 국가들은 과거 비동맹운동에 적극 참여해왔다. 북한과의 일정한 유대는 이런 비동맹운동 속에서 형성되었다. 현재 비동맹운동의 세력이 약화되었기는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의 외교행태에는 비동맹 5원칙에서 주장하는 주권 존중, 국내 문제 불간섭과 같은 원칙들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한국과 북한의 대결, 북한의 핵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국가들 입장에서 한국과 북한은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일 뿐이다.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긴밀한 정치, 경제, 사회문화 관계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과 북한을 똑같은 개별 국가로 다루는 기계적 중립을 유지한다. 이로 인해 북한은 상대적으로 동남아에서 다른 지역에서 보다 훨씬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동남아에서 북한의 활동

이런 배경으로 인해 북한과 동남아 개별 국가 사이 교류는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 넘는다. ARF는 북한이 유일하게 참가하고 있는 다자안보협력체다. 북한이 ARF에 가입하는데 아세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ARF에서 북한의 주장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지만 북한은 ARF를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자리로 꾸준히 활용해왔다. 라오스와 베트남은 여전히 공산당 일당통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북한 노동당과 당대당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같은 공산국가였던 캄보디아도 북한과 관계가 여전하고 나아가 캄보디아 공산화 이전 시아누크 왕은 김일성과 깊은 개인적 친분을 가진 바도 있다. 미얀마 역시 지금은 약해졌지만 과거 군사독재 시절 북한과 군사협력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북한, 미얀마 두 국가가 자연스럽게 가깝게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싱가포르는 북한 고위층이 자주 방문하는 국가인데 일부는 병 치료를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2012년에는 북한 인민회의 의장이 싱가포르를 방문했고, 리수용 외상은 2014년에 방문한 바 있으며, 그 외에 김정남, 김정철, 장성택, 박남기, 김경희 등 최고위 권력층의 친인척들이 병 치료나 그 외의 목적으로 싱가포르를 자주 방문했다. 싱가포르 외에 베트남도 당대당 관계로 인해 고위급 방문이 잦다. 인도네시아는 북한 최고 지도자가 방문한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다. 오래전 일이지만 1965년 김일성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바 있고, 김영남은 세차례 (2002, 2005, 2012)년 인도네시아를 찾았다.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인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Megawati Sukarno Puteri)도 2002년 북한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고 이후 꾸준히 인도네시아가 남북 사이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경제 관계도 작지 않다. 북한의 대외 무역 대부분은 중국과의 무역이지만, 북한의 10대 무역 대상국 안에 태국과 싱가포르가 포함된다. 태국과 싱가포르는 거의 매년 4~6위 사이를 오가는 북한의 주요 무역 대상국 중 하나다. 싱가포르와 북한의 무역은 북한 전체 무역의 약 2%에 불과하지만 늘 5위~6위의 높은 순위에 있다. 주요 무역 품목은 도시 거주민의 기호품으로 맥주, 음료, 담배와 패스트푸드 등이다.
 

최근 연도별 북한의 10대 무역국2
표2.최근 연도별 북한의 10대 무역국

또 싱가포르는 북한을 출발한 선박이 자주 들르는 국가 중 하나다. 이로 인해 대북 제재를 우회하는 불법적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2013년 쿠바에서 Mig-29 부품과 미사일 부품을 선적하고 북한으로 가는 청천강호가 적발된 바 있다. 이 사건에서 싱가포르에 있는 북한 회사 진포해운 (Chinppo Shipping)이 파나마 해운회사에 7만 달러를 운하통과 대금으로 송금한 사실이 적발되었다. 더욱이 이 진포해운은 싱가포르에 있는 북한대사관과 같은 주소로 법인 등록이 되어 있었다. 진포해운 건은 싱가포르 당국에 의해 적발되어 유죄를 인정 받은 건이지만, 이와 유사한 거래와 선박 통과가 싱가포르에서 많이 일어난다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다.

여타 사회문화적 교류도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은 2016년 북한과 교류협력 관계가 있는 인도네시아 국립대학 (Universitas Indonesia)에 김정은 강좌 개설을 요청한 바 있다.3 2015년 김정은은 과거 수카르노 대통령-김일성 관계로 인해 수카르노 재단에서 주는 인도네시아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싱가포르에 근거를 두고 있는 조선교류프로그램 (Chosun Exchange Programme)은 북한 사람들을 초청 경제, 경영, 법 관련 워크숍을 개최하는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자선단체인 Mercy Relief는 2012년 북한 홍수 때 20만 달러의 구호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4 말레이시아의 경우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2011년에 평양에 직항로를 개설하기도 했었고,5 사립대학인 Help University는 김정은에게 명예경제학박사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6

 
차분하게 한-아세안 초국가적 범죄 협력을 강화해야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에 앞서 한가지 혼동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한국 입장에서,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북한이 관련된 사건이고 따라서 남의 일이 아닌 듯 인식된다. 북한이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는 가정 하에 한국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 말레이시아 측에 뭔가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활용해 동남아에서 북한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들을 세게 압박할 좋은 기회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말레이시아 입장에서 이 사건은 북한에 의해서 북한 국민이 말레이시아에서 살해된 건이다. 한국은 이 문제에 직접 연관이 없다. 남북 대치라는 상황으로 간접적 관련성만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건을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지 폭탄 테러와 비교한다. 1983년 북한에 의한 폭탄테러 사건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번 사건은 양곤사태와는 전혀 다른 사안이다. 한국의 외교나 언론이 이 부분을 명확히 인지하고 일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건 수사의 추이나 관련된 움직임에 대한 정보 파악에는 적극적이어야 한다. 혹시라도 우리 쪽에 문의가 들어올 경우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남아 국가들을 북한 관련 사안으로 강하게 압박하려 한다거나 지나치게 간섭하려 한다면 큰 외교적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한국-동남아-북한의 삼각 관계에 대해서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 동남아 국가와 win-win의 방향으로 긍정적으로 관여하는 동시에 북한의 동남아 내 활동을 제약할 것인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현재 매우 당혹스러운 상태이다. 이번 사건은 치안이 좋고 국내 정치가 안정적이라는 말레이시아의 국가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발빠르게 움직이는 이유도 이 사건을 잘 못 다를 경우 말레이시아에 중요한 해외투자와 관광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도 자국민 연루로 인해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 문제 관련 동남아 국가를 압박하려 든다면 자존심 강한 동남아 국가로부터 반발을 불러 올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압박은 고사하고 한-아세안 관계까지 망칠 수 있다. 오히려 한국은 우회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한국은 아세안과 초국가적 범죄 관련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아세안 협력의 강화, 재외 한국민 보호, 그리고 나아가 북한의 활동 억제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이다. 아세안 10개국은 2015년 말 아세안공동체 (ASEAN Community)를 선언하고 실질적 공동체 건설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정치, 안보 분야에서 협력 강화, 경제적 통합, 사회문화적 공통 정체성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아세안의 움직임에 따라서 아세안 국가내 인적 이동이 이전 보다 쉬운 방향으로 계속 제도적 변화가 뒤따르고 있다. 아세안 내 인적 이동과 상호작용을 촉진하기 위해 이미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는 15일~30일 간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협정이 체결된 상태다.7 아세안 국가내 인적이동이 보다 쉬워지면 그에 따라 한 국가 내의 불법적 활동이나 초국가적 범죄 역시 아세안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아세안 내에는 이미 초국가적 범죄 (transnational crime)에 관한 협력체가 구체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아세안내 초국가적 범죄 관련 장관회의 (ASEAN Ministerial Meeting on Transnational Crime)가 1997년부터 설치, 운영되어 오고 있다. 주제도 테러리즘, 마약밀수, 인신매매, 무기 밀매, 해적, 돈세탁, 국제경제범죄, 사이버범죄 등을 포함하며, 테러리즘 관련해서는 테러리스트에 의해 자행되는 핵물질의 이동도 관할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8 아세안 차원의 초국가적 범죄 협력은 아세안+3 (한중일) 차원으로 확대되어 아세안+3 협력의 24개 기능협력 분야에서도 초국가적 범죄를 다루고 있다. 한-아세안 차원에서도 아세안 초국가적 범죄 관련 고위급 회의와 한국 고위급 관료 간 협의도 진행되고 있다 (ASEAN Senior Officials Meeting on Transnational Crime + ROK).

아세안 안에서도, 한-아세안 간에도 인적 이동과 교류는 증가할 것이다. 아세안 내 인적 이동이 더 활발해지면서 아세안 내 초국가적 범죄 관련 네트워크도 더욱 확산될 수 있다. 초국가적 범죄 네트워크의 확산으로 북한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 동남아 초국가적 범죄 네트워크를 이용할 기회도 따라서 늘어난다. 초국가적 범죄가 확산되면 아세안 내에 있는 동남아 사람들이 범죄자로, 범죄의 희생자로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 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 활성화를 따라 한국 사람들의 동남아 국가 방문, 동남아 국가 거주도 늘어나고 이들도 마찬가지로 초국가적 범죄에 더 쉽게 노출된다. 이런 초국가적 범죄에는 일정 부분 북한에 의한 불법적 활동도 포함될 수 있다.

이번 김정남 피살을 계기로 한국과 아세안 사이 다양한 초국가적 범죄 관련 협력에 더욱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한국이 아세안 국가의 치안 및 초국가적 범죄 관련 거버넌스와 능력 (capacity) 향상을 위해 도움을 주는 한가지 방법이다. 한국이 동남아 개도국에게 제공할 수 있는 좋은 협력 사업이자 지역 중견국으로 한국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다하는 일이다. 두번째로 간접적으로 동남아에 나가 있는 재외국민을 보호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동남아 내 초국가적 범죄의 감소는 그만큼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거나 현지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에 대한 위협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세번째로 동남아 내 초국가적 범죄 협력이 더 활성화되면 북한에 의한 불법적인 활동이 동남아에서 발붙일 여지가 줄어든다. 북한에 의해 일어나는 인신매매, 마약 밀매, 돈세탁, 사이버 범죄를 동남아 지역에서 차단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구체적 협력 사항으로 먼저 아세안 국가들의 능력 향상 (capacity building)을 위해서 과학 수사 등 수사 기법과 장비를 공유하고 평소 테러리스트나 초국가적 범죄 집단을 모니터링하는 기법 전수 및 공유 협력을 생각해볼 수 있다. 동남아 개도국들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낙후된 수사 및 모니터링 능력으로 초국가적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초국가적 범죄는 이런 약한 고리를 노리기 쉽다. 두번째로 정보공유 관련 협력이 제고되어야 한다. 동남아 국가들 간에, 그리고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 간에 초국가적 범죄 단체의 활동, 북한 관련 불법 행위들에 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공유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는 초국가적 범죄나 북한 불법행위의 사전 예방을 위해 중요하다. 세번째로 특정 사건이나 사안에 대해서 수사 등 사후 처리에 공조가 필요하다. 일부 국가와 한국인 대상 범죄 관련 수사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더욱 확대해 한국이 동남아 국가에 실질적 문제 해결 관련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