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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對美 특별 메시지, 비핵화 개념 등 의심스러워
제재 완화’가 속셈일 수도

판문점 정상회담 정례화도 성급
대화로 ·동맹 흔들고 핵보유 기정사실화 악용 우려

남북 관계에도 봄이 온 듯하다. 연이은 정상회담 개최에 환영 일색이다. 하지만 개운치 못한 무언가가 있다. 왜 그런지 곱씹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아무 말도 없다. 물론 과거에도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말을 아껴온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이번의 침묵은 독특하다. 핵 문제만큼은 미·북 간의 문제라며 대화를 거부하던 북한이 왜 이번엔 비핵화란 결정적 표현을 한국을 통해 전했을까? 미국이 생각하는 완전한 비핵화라면 그들이 직접 뉴욕 채널을 통해 전달했을 때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북한이 미국에 전달한 특별한 메시지도 궁금하다. 미국을 움직인 중요 제안처럼 회자되지만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집단 지성의 판단에서 벗어나 있다. 만일 그 내용이 신뢰 구축에 관한 일반적 담론이라면 공허하고, 미국인 억류자 송환뿐이었다면 비핵화를 기대하기 이르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기와 대미(對美) 타협이었다면 여전히 핵위협에 노출될 한국이 대신 전달할 성격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물론 한·미 동맹을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하지만 북한의 노동신문은 연일 주한 미군을 비난하고 있다.

북한이 말한 ‘비핵화(非核化)’ 개념이 여전히 모호한 것도 의심스럽다. 북한은 항상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며 미군 기지 동시 사찰과 핵무기 지휘권을 가진 주한 미군 철수를 비핵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문제는 이러한 입장이 바뀌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 만일 북한이 기존의 비핵화 개념을 고수한다면 미국이 받을 가능성도 없거니와 우리 정부의 모양새가 우습게 된다. 미·북 정상회담의 파국을 넘어 한반도를 전례 없는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을 자초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환영은 반갑지만 북한에 고위급 파견을 검토한다는 소식은 걱정된다. 만일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미 동맹을 인정하면 중국의 한반도 구상은 틀어진다. 대북(對北) 영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강도 높은 제재에 동참하며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과 상점 2만여개가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 그 결과가 미국의 세력 강화라면 중국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중국이 제재 이행을 완화하는 순간 북한의 입지는 달라지고, 우리가 생각하는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 이것이 북한의 전략적 속셈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렇듯 남·북과 미·북 정상회담에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데 국내 일각의 목소리는 너무 앞서간다. 벌써부터 평화 체제와 종전 선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반도에 비핵화가 실현되고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면 그것이 곧 평화 체제요 종전임에도 앞뒤가 뒤바뀌고 있다. 판문점 정상회담 정례화도 아직 말하기에 이르다. 실질적 성과를 토대로 벽돌 쌓듯 차곡차곡 쌓아야 튼튼한 남북 관계가 구축된다. 북한의 변화로 정상회담의 성과가 도출되면 그 연장선에서 정상회담 정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군사모험주의란 말이 있다. 객관적인 조건들을 무시하고 근거 없이 성공을 바라며 무모하게 군사행동에 의존하는 것을 말한다. 히틀러의 2차 세계대전이나 북한의 6·25 남침이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최근 국내 일각의 목소리는 그 반대를 연상케 한다. 마치 북한과 대화를 하면 비핵화와 평화가 찾아오는 양 근거 없는 성공을 예단하며 대화에만 집착하고 있다. 군사모험주의의 정반대지만 유사하게 무모하다는 점에서 대화만능주의가 아닐까 싶다. 대화만능주의는 자칫 한·미 동맹과 북핵 공조를 해칠 수 있고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데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대화만능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비핵화에 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주한 미군 철수를 비핵화의 전제 조건으로 받아선 안 된다. 북한의 ICBM 포기만을 수용해선 안 된다. 북한이 핵 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경제 협력이나 평화 체제를 제안했을 때 단호히 비핵화를 말해야 한다.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 변화가 없다면 아직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신년사는 북한의 핵보유, 남북 관계 개선 그리고 정권 출범 70주년 기념이 핵심 메시지였다. 그 요체는 북핵 평화전술, 즉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주변 관계를 개선해 보겠다는 접근이다. 이러한 북핵평화전술과 대화만능주의가 결부되면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안보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중요한 시점에 신중한 접근을 건의하며 대화만능주의를 경계한다.

* 본 글은 03월 19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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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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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