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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게시물은 12월 11일자 조선일보 기고문(“동맹국과 싸우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동맹 없이 싸우는 것”)의 원문으로, 지면 보도에서 생략된 부분은 밑줄로 구분하였습니다.

1인당 방위비 분담금 韓 15달러, 日 10달러, 獨 4달러
美 무역 적자는 값싼 제품 소비·美 국채 매입·투자로 환류돼
상대방 입장 배려하는 ‘신의성실 원칙’ 적용돼야

한·미 동맹이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흔들리고 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의 연간 대미 무역 흑자는 170억달러가 넘는다면서 “부자인 한국이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결렬될 경우 주한 미군 감축이나 철수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한국의 올해 분담 금액인 1조원의 다섯 배가 되는 금액을 요구하고 있고, 이에 대해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도 걱정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게 되었고 이에 한·미 동맹이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맹국 중 한국만큼 국방비를 지출하는 나라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가 넘는 일본은 GDP의 1%, 4만7000달러인 독일은 1.2% 정도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 3만달러 수준인 한국은 다른 동맹국들의 배가 넘는 GDP의 2.5%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 국민 1인이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비교해도 우리는 15달러가 넘지만 일본은 10달러, 독일은 4달러 수준이다. 또한 1991년 주한 미군 주둔 비용 분담이 시작된 이래 1073억원에서 1조389억원으로 10배가량으로 치솟았다.

트럼프의 방위비 증액 요구는 비합리적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국방비 증액을 요구했다. 나토 회원국들은 국방비를 겨우 5% 늘렸을 뿐인데도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큰 업적이라고 자랑했다. 이미 GDP의 2.5% 이상을 국방비로 쓰고 있는 한국에 다섯 배가 넘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것은 형평 문제를 초래한다.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 외에도 매년 6조원어치 넘게 무기를 사고 토지 임대, 공과금 면제 등 2조원이나 되는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해외 미군 기지 중 가장 크고 현대적인 캠프 험프리스 건설 비용 13조원의 90%를 한국이 부담했다.

우리나라가 매년 170억달러 수준 대미 무역 흑자를 보고 있으니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은 합리적인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해서 어느 나라의 무역수지 적자가 그 나라의 경제적 손실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논리다. 우리나라가 연 7%에서 13% 고도성장을 기록했던 1970~1980년대에도 계속 무역 적자를 보았고, 1986년에 와서야 처음 무역 흑자를 낸 것이 이를 증명한다. 2018년 미국은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최대에 달하는 6270억달러 무역 적자를 보았지만, 3%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또한 최근 미국의 실업률은 역대 최저 수준인 3.5%로 낮아졌다. 이러한 점들은 무역 적자가 경제적 손실이 아니란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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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간 무역 수지는 양국의 생산과 소비 구조, 환율 및 금리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한국의 부당한 무역 관행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소비자들이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소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수출품을 원료로 쓰는 미국 기업들도 원가절감의 이득을 보게 된다. 한국 무역 흑자의 상당한 부분은 한국 정부의 미국 국채 매입이나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로 환류되기 때문에 미국의 무역 적자가 미국에 손해라고 보는 것은 정확한 관찰이 아니다.

미국이 세계 금융을 지배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도 무역 적자가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달러화가 세계 화폐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이 달러화를 보유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 핵심 수단이 미국의 무역 적자다. 미국은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고, 수출국들은 달러화를 가져간다. 세계 모든 국가는 달러로 ‘저축하고, 보유하고, 빌리고, 거래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달러화가 기축통화(Key currency)로 자리매김하고, 미국은 이를 통해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것이다.

韓·美 협상에 ‘신의성실’ 원칙 적용돼야

한·미 간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자극적 논쟁을 유발하는 것은 동맹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주한 미군 철수나 감축 가능성이 대표적 사례다. 주한 미군이 철수하면 그 부대는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본토 어디엔가 배치된다. 그렇게 되면 예산이 절감되는 것이 아니라 유지 비용만 더 늘게 된다.

상대방 입장을 배려하는 “신의성실(good faith)” 원칙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상대국에 대한 존중을 상실한 요구는 존경받을 수 없으며, 결국 한국 내에서 반미 감정의 준동을 가져오고 동맹이 약화할 것이다. 군사동맹은 둘 이상 나라가 같은 안보 목표를 공유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우리나라가 미국 방위의 최전방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평가해야 한다. 한·미 동맹 결성 이전의 상황을 보자. 미·소 냉전기가 도래했음에도 1950년 1월, 미국은 한국을 뺀 극동 방어선인 애치슨라인을 발표했다. 이는 북한이 한국을 침공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을 불러왔고, 약 400만명이나 되는 한국인이 희생된 6·25 전쟁으로 이어졌다. 미국 정치인들이 고립주의와 개입주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큰 고통을 겪었다.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경제를 이룩하는 데는 수십년이 걸렸고, 그간 우리 국민이 치른 희생, 고통, 노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우리 입장에서도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게 러시아·중국·북한·일본 등 영토적 야심을 가진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적대적 강대국들 사이에서 우리 혼자 힘으로 자유와 생존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미국과 동맹을 맺어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태평양 너머에 있어서 인지 미국은 다행히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윈스턴 처칠은 “동맹국과 싸우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동맹 없이 싸우는 것이다”라고 갈파했다. 북핵 위협이 커지고 주변국들의 야심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동맹은 누구인가?

 

* 본 글은 12월 11일자 조선일보에 기고된 글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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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정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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